입력 : 2018.06.11 03:08

[4대 은행 10년간 인원 비교]

323명이 희망퇴직한 2012년, 신규채용 인원은 1671명 달해

최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은행들에 청년 채용을 늘리기 위해 희망퇴직을 확대해 달라는 요구를 여러 차례 했다. "은행과 금융공기업의 희망퇴직을 늘리기 위해 퇴직금을 올리는 것을 적극 장려하겠다" "청년 일자리를 위해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해달라"는 발언들이다. 언젠가부터 은행권에선 중고참 직원들을 대상으로 2~3년치 연봉을 주고 조기 퇴직시키는 '명예퇴직'을 연례행사처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최 위원장의 기대대로 은행권의 명예퇴직이 신규 채용 확대로 이어지고 있는 걸까. 본지가 최근 10년간 은행들의 명예퇴직과 신규 채용 실태를 분석한 결과, 둘 간의 상관관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희망퇴직 인원이 많아도 신규 채용이 연평균치보다 적은 해가 많았다.

희망퇴직 늘면 신규 채용 증가?

본지가 최근 10년간(2008~2017년) 4대 은행(KB국민·신한·KEB하나·우리은행)의 희망퇴직 인원을 파악한 결과, 총 1만522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4곳에서 연평균 1500명 정도가 희망퇴직한 셈이다. 연도별 희망퇴직 인원은 차이가 컸다. 2012년(323명)이 가장 적었고, 작년(4302명)이 가장 많았다. 2010년(4037명)이 두 번째로 많은 해였다. 10년간 4대 은행이 지급한 희망 퇴직금 총액은 4조6000억원으로, 한 명당 3억200만원 정도를 받고 퇴직했다.

최근 10년간 4대 은행 희망퇴직·신규 채용 인원
일러스트=김현지
같은 기간 4대 은행은 1만5087명의 신입 직원을 뽑았다. 희망 퇴직인원과 거의 같은 규모다. 신입 채용은 희망퇴직에 비해 연도별 편차가 적었다. 2015년(2075명) 가장 많이 뽑았고,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 2009년(1183명) 가장 적게 뽑았다. 희망퇴직을 많이 했다고 해서 바로 그해나 이듬해 신규 채용을 크게 늘리는 상관관계는 발견되지 않았다. 예컨대 희망퇴직 인원이 가장 적었던 2012년(323명) 신규 채용 인원은 1671명이었는데, 희망퇴직 인원이 가장 많았던 작년(4302명)의 신규 채용 인원(1900명)과 큰 차이가 없었다. 희망퇴직 인원이 두 번째로 많았던 2010년(4037명)의 신규 채용 인원(1259명)은 10년 중 세 번째로 적은 규모였다. 최 위원장이 "돈을 많이 줘서 퇴직을 유도하면 10명 퇴직할 때 7명 채용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희망퇴직의 고용 유발 효과를 측정하기는 어렵다는 게 은행 인사 담당자들이나 금융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희망퇴직을 적게 한 해는 신규 채용을 줄이는 것이 맞겠지만, 은행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압박 등으로 채용인원을 줄이긴 어렵다"고 말했다.

누구를 위한 희망퇴직 확대?

은행들은 "지난 10년간 직원·지점 수를 꾸준히 축소하는 다운사이징 중이란 걸 감안하면, 대규모 희망퇴직을 통해 신규 채용 여력을 조금이나마 늘려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 5년간 희망퇴직·신규 채용 인원은 각각 9229명·8043명이고, 그전 5년은 5996명·7044명이다. 최근 5년이 그전 5년보다 3200여 명을 더 내보냈는데, 신규 일자리도 1000명 정도 많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몸집을 줄여가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은행들의 다운사이징 속도는 계속 빨라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4대 은행 인력(6만5707명→6만457명)과 지점 수(4057개→3579개)는 각각 8%, 11.8% 줄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2008~ 2012년보다 희망퇴직 인원이 1.5배 많았던 2012~2017년의 감소 폭이 컸다. 이 기간 직원·지점 수는 12.7%, 13.6%씩 줄었다. 각각 5.4%, 2.1% 증가한 2008~ 2012년과 많이 다르다. 인사컨설팅 전문 기업 머서코리아 윤훈상 전무는 "비대면 채널과 디지털 뱅킹이 확산되면서 은행의 다운사이징 속도는 앞으로 더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의 주문대로 은행들이 청년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고비용 희망퇴직을 늘리는 것은 주주와 은행 고객들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일 수 있다. 1인당 3억원에 달하는 희망퇴직 비용은 배당 축소, 수수료 인상 등 어떤 식으로든 주주와 고객에게 전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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