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자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 老巨樹 화집 내고 전시회도 열어… 어릴 적 화가의 꿈 정년 후 이뤄
신라 화가 '솔거'의 이름을 딴 경기 군포의 한 아파트엔, 현관에 '초인종을 누르지 말라'며 휴대전화 번호를 종이에 적어 붙여 놓은 집이 있다. "그림을 그릴 땐 집중하느라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요…." 집주인은 원로 국문학자인 조동일(79) 서울대 명예교수다.
조 교수는 영남대,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대 교수와 계명대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한국문학통사' '세계문학사의 전개' 등 저서로 문학비평과 고전문학 연구에 독보적인 업적을 냈고, 저서 70여권의 정수를 모은 '동아시아 문명론'으로 한·중·일 학문 통합의 비전을 제시했다.
조동일 교수가 경기 군포 자택의 작업실에서 자신이 그린 노거수 그림 앞에 서 있다. 그는 “동·서양화의 느낌이 고루 나는 구아슈로 그린다”고 했다. /성형주 기자
국문학계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그가 붓을 잡았다. 지난 4년 동안 그린 노거수(老巨樹) 그림 300점을 최근 발간한 화집 '노거수전'(지식산업사)에 실었다. 13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인사동 조형갤러리에서 전시회도 연다.
까까머리 소년 시절부터 꿈이 화가였다. 경북고 2학년 때인 1956년엔 두 친구와 함께 대구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부모님께서 '그것으로는 생계가 어렵다'고 반대하시는 바람에 학자로 진로를 바꿨죠. 다시 붓을 잡게 된 것은 10년 전이었습니다."
십 대 때 주로 썼던 구아슈(물과 고무를 섞어 만든 불투명한 수채 물감)를 구해 다시 작업하기 시작했다. "수채화처럼 가볍지도, 유화처럼 두껍지도 않으면서 동양화와 서양화의 느낌이 두루 나는 재료지요." 그림을 따로 배우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개척했다. 동양화가였던 아내 허정씨와 2010년 부부전(展) '풍경+산수'를 열었다. 지난 2월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엔 혼자 사는 아파트를 연구실 겸 아틀리에로 쓰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하루 4~5시간 작업한다.
그의 화폭 속 늙은 나무들은 거칠고 역동적이면서도 생명력이 넘친다. 온갖 풍상과 신고(辛苦)를 겪으며 포효하듯 몸을 비튼 채 세월을 견뎌 연륜과 품격이 묻어난다. 나무 전체를 그리지 않고 줄기나 가지, 잎, 꽃 같은 일부만을 담았다. "전체를 그리면 나무가 작아집니다. 그러면 표정을 살리기 어려워요." 왜 늙은 나무를 그리는가? "나무가 나이 들수록 얼마나 원기 왕성하고 우렁찬 기품을 드러내는지 보여주려 했지요. 인간의 정신도 그걸 본받아 '나무처럼 늙자'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겁니다."
조 교수가 가장 많이 그린 나무는 느티나무다. "가장 품위 있고 고목(古木)이 고목다운 나무지요." 그다음은 정신적 격조를 지닌 소나무, 흥취가 살아 있는 버드나무 순이다. 고목에 피는 매화의 아름다움도 놓칠 수 없었다. 학문적 역량과 연륜이 그림에 농축된 것 같다고 했더니 "내가 계속 그림만 그렸다면 기교야 늘어났겠지만 문기(文氣)는 부족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노(老)학자는 어린 시절 왜 그림이 그렇게 좋았는지 이제야 깨달았다고도 했다. "글이 마음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는 거라면, 그림은 밖에 있는 것을 마음속으로 가져오는 것이더군요. 글을 쓰면서 번뇌와 망상에 시달리는 반면, 그림을 그리면서 그 번뇌와 망상을 다 씻어내게 됩니다."
조 교수는 "다음엔 산을 그려볼 생각"이라고 했다. "고결함, 높은 이상, 추구해야 할 목표, 탈속(脫俗) 이미지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