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6.14 22:52

[아일랜드, 금융위기때 성장률 -7.5%서 지난해 7.8%로 뛰어]
일자리 정책 등 단기 성과보다 근본 해결책인 예산삭감 집중

지난 4일(현지 시각)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그래프턴 거리는 국가 지정 공휴일인 은행의 날을 맞아 온종일 붐볐다. 식당에는 지역 사람과 관광객들로 넘쳐나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백화점과 상점 점원들은 밀려드는 손님을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브라운 토마스 백화점의 점원 마야 오코너(43)씨는 "5년 전만 해도 손님이 없어 내 일자리를 걱정했지만, 요즘은 손님이 너무 많아 힘들다"고 말했다. 시내는 부동산 경기 회복으로 곳곳에서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더블린 도심 스카이라인은 고층건물을 지을 때 사용하는 타워크레인이 점령했다. 아일랜드가 2010년 IMF 구제금융의 악몽을 완전히 떨쳐내고,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었다.

부활한 '켈틱 타이거'

아일랜드는 반세기 만에 농업에 의존하던 나라에서 첨단산업 국가로 변신해, 한때 '켈틱 타이거(켈트의 호랑이)'로 불렸다. 개방·수출 경제로 고도성장을 이뤘지만, 그 부작용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희생양이 됐다. 2009년 경제성장률은 -7.5%까지 떨어졌고, 2010년 IMF (국제통화기금),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연합(EU)으로부터 총 850억유로(약 109조원)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지난 4일(현지 시각)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시내의 번화가.
지난 4일(현지 시각)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시내의 번화가. 아일랜드는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유럽의 병자 국가 중 하나로 꼽히면서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지만 작년에는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로 탈바꿈했다. 아일랜드의 성공 비결로는 강력한 긴축재정을 통한 국가 재무 건전성 향상과 해외 기업 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이 꼽힌다. /블룸버그
그로부터 3년 뒤 구제금융에서 벗어난 아일랜드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7.8%)'을 자랑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경제 가치는 '켈틱 타이거'라고 불렸던 2007년보다 56% 증가한 3000억유로(약 384조원)에 가까워졌다.

16%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지난 2월 5.1%로 10% 포인트 내렸다. 이는 2008년 5월(5.9%)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ESRI(아일랜드 경제사회연구소)는 "내년 초가 되면 실업률은 4~5%로 '완전고용'상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낮은 법인세 정책으로 해외 투자 이끌어 위기 탈출

전문가들은 아일랜드 부활의 원동력으로 '원칙을 지킨 경제정책'과 '풍부한 투자 유치'를 꼽았다. 아일랜드 정치인들은 일자리 정책과 같은 단기 성과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인 예산 삭감에 집중했다. 공무원 임금과 연금을 삭감하는 등 긴축재정을 강행했다. 또 세수가 부족했지만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를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12.5%)으로 유지했다.

2018년 한국과 아일랜드의 국가 경쟁력
그 결과 인텔, 트위터,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화이자, 노바티스 등 다국적 기업이 아일랜드에 유럽 본부를 두고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전 세계 10대 소프트웨어 회사 중 9곳을 유치했다. 전 세계 10대 제약회사 중 9곳도 아일랜드에 투자했다. 지난달에는 알파벳의 구글이 더블린에 3억유로(약 40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낮은 법인세율, 유로존 내 유일한 영어 사용국, 인구의 3분의 1이 25세 이하일 정도로 젊고 생산성 높은(세계 3위·2018년 IMD 세계경쟁력 보고서)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킨 결과다. 2018년 아일랜드의 기업효율성은 세계 10위로, 한국(43위)보다 크게 앞서 있다. 아일린 샤프 아일랜드 투자청(IDA) 부청장은 "사업을 국제화하려는 해외 기업들은 아일랜드를 '유럽의 관문'으로 간주한다"며 "우리는 고도로 숙련된 노동자, 투명한 과세체제 등을 통해 다국적 기업에 매력적인 투자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질의 외국인 투자는 수출 증대, 고용 창출로 이어져 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유로존 경제 전문지인 더스트리트는 "아일랜드의 경기 회복은 경제 위기 극복의 교과서"라며 "재정 정책을 최소화하고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 경기 회복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아일랜드의 경제 부활에 대해 '레프러콘(leprechaun·키가 작고 녹색 옷을 입은 아일랜드 요정) 경제학'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애플 등 많은 다국적 기업이 지식재산을 아일랜드에 두고 있기 때문에 실제 아일랜드에서 제조·생산·판매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아이폰 판매가 늘어나면 아일랜드 경제 성장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일랜드의 경제 전문가 댄 맥로린씨는 "해외 기업들로부터 왜곡되지 않는 대표적인 경제지표 중 하나가 고용이고, 현재 고용시장을 보면 아일랜드 경제는 크게 회복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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