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거장 미샤 마이스키, 칠순 맞아 세계 돌며 이색 공연 15~16일 한국서 차이콥스키 협연 "여섯 자녀와 실내악단 만들고파"
"내가 일흔이라니! 이제 막 출생신고를 하고 세상에 나온 느낌인데 말이죠."
백발의 사자 같은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70)가 시럽 퍼부은 아이스커피를 한입에 삼켰다. 아이패드를 꺼내 가족사진을 보여줬다. "세 살 된 막내딸 밀라 엘리나 좀 보세요. 요즘 발레를 배우고 있어요. 다섯 살 마테오는 축구광인데, 엄마를 닮아 잘생겼어요. 아홉 살 마누엘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일생 첼리스트로 살아온 마이스키가 올해 겹경사를 맞았다. 칠순 그리고 한국 데뷔 30주년이다. 유럽에서는 연초부터 그의 70세를 기념한 공연이 열리고 있다. 40년 지기(知己)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바이올리니스트 재닌 얀센과 손잡은 '골든 트리오'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으로부터 별 다섯 개 극찬을 받았다. 피아노 치는 딸 릴리(31), 바이올린 켜는 아들 사샤(29)와 함께한 '패밀리 트리오'를 절찬리에 끝냈고, 피터 비스펠베이 등 동료 첼리스트 16명과 무대에 오르는 '첼로마니아'도 이어진다.
지난 11일 만난 미샤 마이스키는 "아이패드에 악보를 서른 곡 넘게 담아두고 틈날 때마다 읽는다"고 했다. "활을 놀리는 게 연습이라고 생각하나요? 더 중요한 건 음악을 잊지 않는 거예요. 볼수록 깊은 해석이 떠오르니까요. 젊은이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건 음악 앞에서 겸손해지는 겁니다." /이진한 기자
15~16일 서울과 경남 김해에서는 비엔나 체임버 오케스트라(지휘 슈테판 블라더)와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협연한다. 지난 11일 잠실에서 만난 그는 "한 번뿐인 70세를 소중히 보내라고들 당부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69세도 한 번, 71세도 한 번이니 모든 날이 소중하다. 나한텐 한국 데뷔 30주년이 더 뜻깊다"며 웃었다.
옛 소련 라트비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부터 첼로를 배웠다. 17세 때인 1965년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협연 후 '제2의 로스트로포비치'란 별명을 얻었다. 1966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 후 모스크바 음악원에 들어갔다. 이듬해 아버지를 잃었다. 공산당을 피해 남은 가족들이 이스라엘로 망명하자 그는 누명을 쓰고 노동수용소에 갇혔다. 활 대신 삽을 잡아야 했다. "1970년 7월 22일부터 1972년 1월 22일까지였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 달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1973년 이스라엘로 망명했고, 같은 해 11월 뉴욕 카네기홀에 데뷔했다.
한때는 그도 음유시인을 떠올리게 하는 잘생긴 외모였다. 한 독일 음반사가 마이스키 음반에 '레이디스 킬러'라는 부제를 단 적도 있다. 첼로 거장 로스트로포비치와 퍄티고르스키에게 배운 유일한 연주자이기도 하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열정과 테크닉, 시적 감성과 섬세함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연주자"라 극찬했고, 퍄티고르스키는 "평생 첼리스트로 살아갈 운명"이라고 했다.
첫 아내는 음향 엔지니어였다. 그 사이에서 릴리와 사샤가 태어났다. 2002년 이혼했다. 브뤼셀에 집을 짓던 중 아내가 건축가와 사랑에 빠졌다. 거액의 위자료를 주느라 쉴 새 없이 연주회를 뛰어다니다 에블린을 만나 2007년 재혼했다. 공연 관계자들은 공항에 그를 마중 나갔다가 두 번 놀란다. 모델처럼 걸어나오는 젊은 아내에게 놀라고, 첼로와 여행가방을 짊어지고 따라오는 거장을 보고 또 한 번 놀란다.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은 "아빠가 된 것"이라고 했다. "가족애(愛)는 내 음악의 원류. 여섯 아이와 '마이스키 실내악단'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첼로가 아닌 서로 다른 악기를 쥐여줬다. 원하는 삶을 살았느냐 물으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첼로 덕분에 '세계 시민'이 됐죠. 라트비아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자랐고, 이탈리아 첼로를 연주하며 프랑스 활, 독일 줄을 쓰고 있어요. 음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내 고향. 내가 했던 그 모든 연주가 다 소중해요."
마이스키는 "앞으로 내 앞에 어떤 연주가 펼쳐질지는 모른다"고 했다. "다만 이것만은 기억할 거예요. 바흐와 모차르트, 베토벤과 브람스는 당대의 고정관념을 깨려고 처절하게 몸부림쳤던 작곡가였다는 사실!" 건너편에 앉은 에블린을 보더니 그가 또 속삭였다. "언젠간 나도 죽겠죠. 그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돈키호테'를 연주하면서 눈을 감고 싶어요. 돈키호테처럼 오래 살다가 젊게 죽는 것. 그게 내 유일한 바람이니까요."
▶미샤 마이스키&비엔나 체임버 오케스트라=15일 오후 7시 30분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16일 오후 5시 롯데콘서트홀, 1577-5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