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에 누군가 있다|찰스 퍼니휴 지음|박경선 옮김|에이도스|443쪽|2만원
"다 마신 맥주병을 내려놓는데, 머릿속에서 '한 병 더 마실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미국의 심리학자 러셀 헐버트는 피실험자들에게 신호음을 내는 장치를 나눠주고 '삐' 소리가 날 때마다 직전에 떠올랐던 생각을 기록하게 했다. 그리고 떠오른 생각이 소리로 들리는 건지, 단어로 보이는 건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구현되는지 묻는다. 피실험자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목소리예요. 나 자신의 목소리로 들립니다."
이 책은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책이다. 심리학자인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기존 학계에서 조현병의 주요 증상으로 여겨졌던 환청(幻聽)에 대한 오해가 풀린다. 우리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목소리가 살고 있고, 이들은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다 가끔 싸우기도 한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귀를 기울이면 누구나 이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책은 환청이 우리 모두가 겪는 일반적 경험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내적 반추가 건강하고 생산적인 정신 활동인 데다가 창조성의 원천이라는 것. 스스로와의 대화에 인색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