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6.19 16:14

얼마 전 영국 해리왕자의 로열웨딩에 세계인의 관심이 쏠렸다. 신부의 웨딩드레스는 물론이거니와 내로라하는 하객들의 패션에 이목이 쏠렸다. 그 가운데 단연 하객 패션 베스트로 꼽힌 커플은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 부부였다. 아내의 노란색 드레스와 모자에 맞춰 클루니는 밝은 회색 슈트에 노란색 스트라이프 넥타이로 멋진 조화를 이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기에 다각도로 찍은 그 날 그의 스타일을 여기저기서 열심히 찾아봤다. 나이가 들어도 중후한 멋이 빛나는 겉모습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다.

수년 전 그는 친구 14명에게 각기 10억 원이 넘는 돈을 선물했다. 4년이 지난 지난해 말 그중 한 친구가 어느 방송에서 밝혀 알려지게 됐다. 클루니가 가까운 친구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하더니 지폐로 100만 달러씩 채운 가방을 선물했다는 것이다. 놀란 친구들에게 클루니는 “너희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을 거다. 인생에 너희가 있어 행운이다. 우리 모두 힘든 시간을 지나왔고 몇몇은 아직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아이나 학교, 대출금 문제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선물에 따른 증여세까지 내줬다고 한다.

돈이 많다고 해서 넉넉히 베푸느냐는 건 별개의 문제인 경우가 많던데, 역시 멋진 남자가 아닐 수 없다. 그와 나이대가 비슷해서일까. 통이 그처럼 엄청나진 못해도 예순 안팎의 우리세대는 돈이 좀 있는 쪽이 없는 쪽에게 밥과 술에 간혹 차비까지 내주곤 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특히 남자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많이 봤던 것 같다. 여자도 여자 나름이어서, 내 주변에는 만나면 늘 밥값을 책임지려는 선배도 후배도 있다. 선배니까, 후배지만 아직 월급을 받고 있으니까 란 이유를 내세운다. 식사 중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계산을 미리 해버리지 않으면 당하기(?) 일쑤다.

‘더치페이’

대접할 때는 고급 음식점을, 대접받을 때는 실비 집을 고집하는 친구도 있다. 그 친구에게 모처럼 고급 음식을 대접하려다가 그 고집을 못 꺾어 마음 상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돈이 많은데도 네가 요만큼 해줬으니 나도 딱 고만큼 해준다, 아니, 주는 것보다 받는 게 좋다는 이들이 많은 세상에서 존경스러운 친구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친구들 모임에서는 이번엔 누구 차례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돌아가며 밥값을 내는 게 보통이다. 최근 들어 전체 비용을 똑같이 나눠 내는 ‘N 분의 1’이란 단어가 자주 들려와도 우리는 그냥 하던 대로 한다.

이전에도 그 비슷한 단어가 있긴 했다. 각자 먹은 대로 내는 ‘더치페이’였다. 식민지 전쟁으로 갈등이 커진 영국인들이 네덜란드인들을 비하하기 위해 그들의 대접문화를 ‘더치 트리트(treat)’라 했고, 이를 ‘지불하다’라는 단어 ‘페이(pay)’로 바꾼 한국식 영어란다. 그런데 수십 년 직장생활 동안 나는 “더치페이하자”를 들은 기억이 없다. 상사나 선배는 당연한 듯 여럿의 밥값을 냈고, 동년배들끼리면 누군가 “내가 쏠게”하고 나섰다. 계산이 마무리되기까지 구두끈을 천천히 매고,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시간을 끄는 이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마냥 얻어만 먹는 이는 없었다. 언제든 주머니사정에 맞춰 쏘면 그만이었다.    


이상한 문화?

연애비용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밥값은 남자가 내고, 여자는 찻값 정도 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요새는 ‘데이트통장’을 만들어 연애비용을 둘이 공동 부담하는 커플들이 많다. 청년세대에선 이런 걸 “개념 있다”고들 말하는가 보다. 아들도 일찌감치 데이트통장을 만들어 쓰고 있다고 한다. 합리적으로 보이면서도 여자 친구가 기특하게 여겨지는 건 왜일까. 그래서 데이트하러 나가는 아들 등 뒤로 이따금 한마디 얹게 된다. “통장에서 말고 따로 뭐라도 여친에게 더 챙겨주고, 네가 돈 좀 더 쓰고!”

내게도 ‘N 분의 1’ 모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왠지 친밀도가 덜한 느낌이 든다. ‘N 분의 1’이 개개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방식으로 느껴져서일까. 함께 요리를 시켰어도 다이어트 중이라서, 컨디션이 별로여서, 썩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서, 늦게 와서, 모임을 주도하느라 조금 밖에, 또는 거의 먹지 못할 수도 있다. 신속 정확하게 N분의 1로 나누면 깔끔해서 좋기는 하다. 하지만 혹 손해 봤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없을까. 그 정도야 전체를 위해서 기꺼이 감수한다 쳐도, 내색은 안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의 참가 횟수는 점점 줄어들지 모른다.

언젠가 한 문인이 택시비에 대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를 배웅하며 친구는 택시를 잡아주고 택시비까지 쥐여줬다. 그러나 그는 친구가 보이지 않자 바로 택시에서 내렸다. 집에는 쌀이 바닥난 형편에 택시를 타고 갈 수 없었다. 그 돈으로 대신 쌀을 샀노라고 문인은 회고했다. 그렇듯 친구 간에도 서로 사정을 다 알아채기는 어렵다. 어쩌면 자존심 때문에 말하려 하지 않고, 어쩌면 부담스러워 알려 하지 않으면서 대화는 공허해진다. 돈 몇 푼 한다고 그러니, 그거 참 좋은데 사서 써봐라, 먹어봐라, 가봐라…. 미국 LA에 처음 왔을 때 소파에서 잠을 자며 생활했다는 클루니에게 친구들이 그랬다면 깜짝 선물이 가능했을까.

일본과 중국에서는 가족이나 친척끼리도 각자 내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특별히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모를까, 한 사람씩 차례로, 또는 선배나 연장자가 계속 비용을 부담하는 한국문화가 밖에서는 이상하게 보이는가 보다. 이제는 달라지려나. 더치페이를 건너 아예 N분의 1로 가는 분위기이니 말이다. 줄여서 ‘N빵’으로 통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단 한 글자이면서도 ‘빵’은 N분의 1을 밀어붙이는 힘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재론의 여지를 싹둑 자르는 듯도 싶으니 N빵이 대세인건 분명하다. 그러나 돈 가방까진 아니라도, 국수 한 그릇일지언정 주고받는 가운데 솟는 정이 실종되는 것만큼은 대세가 아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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