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6.20 03:06

별도법인 독립하고 자금 수혈… 쇼핑업계 2위, 공격적 확장 나서

SK그룹의 온라인 쇼핑몰 브랜드인 '11번가'가 별도의 회사로 새롭게 출범한다. 11번가는 새 출발과 함께 국민연금 등으로부터 5000억원의 투자를 받기로 했다. 국내 온라인 쇼핑업체 2위인 11번가가 조직 정비와 자금 수혈을 마치고 공격적인 영역 확장에 나서는 것이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플래닛은 19일 이사회를 열고 온라인 쇼핑몰 사업 부문인 11번가를 별도의 법인으로 떼어내는 안건을 의결했다. 신규 법인명은 온라인 쇼핑몰 브랜드인 11번가를 그대로 쓰며 오는 9월 1일 공식 출범할 계획이다. 지난 18일 국민연금은 투자심의위원회를 열고 사모펀드 H&Q 등과 함께 11번가에 지분 투자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11번가의 기업 가치를 약 2조7000억원으로 인정하고, 5000억원을 투자해 지분 18.2%를 확보한다. 한편 SK플래닛은 시럽(전자지갑), OK캐쉬백(마일리지) 등의 기존 사업 분야에 SK 계열사의 앱 개발을 맡는 SK테크엑스를 흡수 합병해 혁신 기술 개발 기업으로 변신한다.

◇신선식품·인공지능 주문 기술에 5000억원 투자

독립 출범하는 11번가는 보다 빠른 의사 결정 체계를 구축하고 온라인 쇼핑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다. 5000억원의 투자금은 신선식품 부문을 강화하고, 인공지능(AI) 음성 주문·결제 기술을 확보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현재 11번가는 의류나 전자제품에서 강점을 보이지만 생선·고기와 같이 급성장하는 신선식품 시장에서는 경쟁사에 밀린다.

SK의 온라인 쇼핑 사업 재편
11번가는 신선식품의 배송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11번가에 입점한 판매자는 그동안 소비자의 주문을 받으면 자신이 직접 물건을 보내야 해 빠른 배송에 애로를 겪었다. 앞으로는 판매자들이 신선식품을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11번가 물류 창고에 보관하고 주문이 오면 여기서 곧바로 배송을 할 계획이다. 11번가의 고위 관계자는 "입점한 판매자들이 배송비를 절감할 수 있도록 11번가가 물류 회사와 일괄 대행 계약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11번가에서 현재 시범 도입한 음성 주문 기능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의 인공지능 스피커인 '누구'에서 사고 싶은 상품을 음성으로 말하면 바로 결제까지 마칠 수 있는 방식이다. 현재는 휴지·생수 등 일부 생필품에만 적용하지만 대상 상품을 대폭 확대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연내 이동통신 서비스와 인터넷TV, 쇼핑을 결합한 새로운 상품인 T프라임(가칭)을 선보일 예정이다. 미국 아마존의 유료 회원 쇼핑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을 본뜬 상품이다. 아마존은 한 달에 12.99달러를 낸 고객에게 쇼핑할 때 할인 혜택과 함께 아마존이 보유한 음악과 동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1번가의 T프라임도 쇼핑 할인 혜택을 기본으로 SK그룹이 보유한 이동통신 상품(SK텔레콤)이나 IPTV(SK브로드밴드) 상품의 요금을 깎아주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1번가의 홀로서기 성공할까…적자 탈피가 급선무

온라인 쇼핑업계에서는 11번가의 독립을 '홀로서기'로 보고 있다. 11번가를 사업 부문으로 떠안았던 SK플래닛은 지난 2년 동안 무려 5000억원대 누적 적자를 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11번가 사업 부문에서 나온 것이다. 게다가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은 G마켓과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가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가운데 11번가를 포함해 쿠팡, 티몬, 위메프 등 후발 주자들은 할인 쿠폰을 뿌리면서 적자를 각오하고 규모를 키우는 상황이었다.

11번가 측은 이에 대해 "지난해 거래액 규모가 9조원을 넘어서면서 온라인 쇼핑몰의 흑자 전환을 위한 기준 거래액(10조원)에 바짝 다가섰다"며 "내년이면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업계의 한 관계자는 "쿠팡 등 경쟁사들은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해온 반면 11번가는 SK그룹의 울타리 속에 안주한 측면이 있다"며 "올 하반기 성적표가 11번가의 진짜 경쟁력을 가름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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