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만 해도 코스피지수가 고공 행진하면서 지수 2600선을 넘길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도 나왔다. 한 해의 절반쯤 지난 현재, 한국 증시는 2300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19일 코스피지수는 2340선에 턱걸이하면서 올해 최저치였던 2월 9일(2363.77)보다 더 떨어졌다. 지난 12일부터 닷새 연속 하락하는 동안 코스피지수는 5% 넘게 떨어졌다.
코스피지수 하락을 이끌고 있는 주체는 외국인이다. 지난 11일부터 이날까지 외국인은 6거래일 연속 순매도(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했다. 이 기간 유가증권시장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은 1조7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들어 현재까지로 넓혀보면 유가증권시장에서만 외국인들이 3조3500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한국에서만 돈을 빼는 게 아니다. 18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한국,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태국 등 6개 아시아 신흥국에서 유출된 외국인 자금은 190억달러(약 21조원)에 이른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10년 만에 최대 규모다. 신흥국 금융 위기가 재현되는 걸까?
◇원화 가치 하락하자 외국인 매도 공세
외국인이 유가증권시장에서 '팔자' 세를 이어가는 주요인은 환율 때문이다. 올해 초 1060원대였던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18일 1100원을 돌파했고, 19일엔 1110원까지 치솟았다. 환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원화 가치가 떨어졌다는 뜻이다. 환율이 오르면 외국인은 환차손(換差損)을 입기 때문에 투자금을 빼가는 것이다.
환율이 상승한 원인은 무엇일까. 미국이 기준금리를 0.25% 올리면서 한·미 간 금리 차이가 0.5%포인트로 벌어진 것을 비롯해 미국·유럽의 통화정책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문정희 KB증권 연구원은 "지난 14일 종료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에 대해 시장은 '매파적'으로, 당일 저녁에 발표된 유럽중앙은행(ECB) 회의 결과에 대해서는 '완화적'으로 평가했다"면서 "미국과 유럽의 상반된 통화정책 결과로 유로화는 약세, 달러화는 강세를 나타냈고, 달러 강세는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중국 간 무역 전쟁 우려 때문에 안전 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면서 위험 자산으로 분류되는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인 것도 환율 급등 요인이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미 연준과 ECB 회의 결과에 더해 그동안 진정 조짐을 보이던 G2(미·중) 간 무역 분쟁 격화가 추가 악재로 등장해 환율 변동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양국 간 무역 분쟁은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외국인이 '셀 코리아'를 외치는 또 다른 이유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미국이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대해 관세 25%를 부과해 중국의 대미 수출이 10% 감소하면, 한국의 대중 수출은 282억6000만달러(약 31조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2분기 실적 우려에다 경제지표 부진
대외적으로 악재(惡材)를 상쇄할 만한 대내적인 호재(好材)가 있으면 좋겠지만, 이마저도 마땅치 않다. 우선 2분기 기업 실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의 20%에 육박하는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이 갤럭시S9 판매 부진, 낸드플래시 가격 하락 등으로 기대에 못 미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유진투자증권은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를 15조7000억원에서 15조2000억원으로 낮췄고, 한국투자증권도 14조7000억원으로 기존 전망치 대비 6%가량 낮췄다. 여기에 5월 취업자 증가가 7만명대에 그치는 등 고용, 투자, 소비 등 각종 경제지표가 부진하다는 점도 외국인이 한국을 떠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통화 당국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탈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별다른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19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연말 금리가 설령 1%포인트까지 벌어진다 해도 단기에 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시장에서 느끼는 외국인 이탈은 생각보다 심각하다"면서 "당국은 '괜찮다'는 말만 하지 말고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