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가 이기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일본 범죄·추리소설가 이사카 고타로(47)는 "결기"라 답하고 있다. '골든슬럼버' '마왕' '사신 치바' 등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지위를 확고히 한 그의 경우, 소설 속 주인공은 소시민이고 약자이나, 짓밟히고 목숨을 잃을지언정 끝내 이기고 만다. 새 장편 '악스(AX)'의 국내 출간을 맞아 처음 한국을 찾은 그를 19일 만났다. 이번 소설의 핵심 키워드 역시 '당랑지부(螳螂之斧)'. 수레 앞에서 도망치는 대신 사마귀는 가드를 올린다.
새 장편소설 '악스'(알에이치코리아) 국내 발간을 맞아 19일 서울 시청 앞에서 만난 이사카 고타로는 "전날 밤 이곳에서 월드컵 거리 응원하던 시민들이 경기 후 질서 있게 해산하는 걸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Junichiro Kibe
―이런 일관된 주제 의식은 왜?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내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자가 이겨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현실에서는 어려우니 소설을 통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소설을 쓰는 이유다. 나는 나만의 세상을 창조한다." 소설은 지난해 제6회 시즈오카 서점대상(소설부문)을 수상했다.
'악스'는 특급 살인 청부업자가 알고보니 공처가(恐妻家)였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살인에서 손을 떼려는 주인공과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의 알력을 다룬다.
―'공처가 킬러'는 어쩌다 탄생했나?
"나 역시 아내가 무섭다. 주변에 아내 앞에서 약자가 되는 분이 많다. 밤늦게 배가 고파도 괜히 바스락거리다 아내를 깨울까 어육소시지만 먹는다는 출판사 편집자의 얘기를 들었다. 이런 사람이 실은 사악한 킬러라면 어떨까? 거기서 시작됐다." 미스터리 소설가 시마다 소지를 동경해 2000년 문단에 입성한 이래, 독특하고 유머러스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지금껏 쏟아낸 단행본만 30권. 한국에만 올해 3권이 나왔다. 그리고 '일본 신세대의 거울'로 평가받던 신진 소설가는 이제 50대를 앞둔 중견이 됐다.
―그사이 뭐가 변했나?
"중학생 아들을 둔 아버지가 됐다. 가장 큰 변화다. 지금까지는 청년, 아들로서의 감각으로 써왔다. 하지만 이번엔 아버지가 주인공이다. 아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내가 사는 센다이(仙台)에 큰 지진이 나기도 했지만, 아이가 다 클 때까지만이라도 세상이 더 나빠지지 않길 바라게 됐다. 조금 슬픈 줄거리더라도 마지막엔 조금 웃을 수 있는 요소를 넣고 싶었다. 상쾌한 음악이 흐르듯이. 어두운 마음이 돼 고개 숙이는 소설은 쓰고 싶지 않았다."
그의 소설엔 반드시 범죄와 음모가 등장하지만, 개인으로서의 악당보다 국가나 시스템 등의 거대 악(惡)을 건드린다.
―가장 경멸하는 악은 뭔가?
"스스로는 안전하면서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 공격받을 우려가 없는 상황에서 하는 공격. 대결하지 않는 것. 나는 때려도 되고, 남은 안 된다는 자세. 사회 전반에 이런 악이 퍼져 있다. 그건 페어(fair)하지 않다. '페어'야말로 내가 아들에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하나의 가치다."
―왜 추리소설을 쓰나?
"삶 속엔 수많은 수수께끼가 있지만 답은 보이지 않는다. 추리소설엔 반드시 답이 있다. 하지만 독자의 반 보(步) 뒤에 있는 뻔한 전개는 최악이다. 반드시 다음 문장이 궁금해야 한다. 예전의 나였다면, 나는 내 소설을 읽지 않을 것이다. 너무 유명하니까. 하지만 나 같은 독자에게도 '읽어보니 재밌네?' 평가받고 싶다."
그는 도호쿠대학 법학부 졸업 후 7년간 시스템 엔지니어로 근무한 적이 있고, 여전히 회사원처럼 쓴다. "월급쟁이였다 보니 소설도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에 두 편씩 썼다. 회사 경험은 소설 쓰기에 큰 도움이 됐다. 사람 공부도 제대로 했고. 정말 이상한 사람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