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6.21 03:07

[근로시간 단축]
기업 인사 담당자들 "여전히 혼돈… 해결된 건 아무 것도 없다"
업체들 "노사합의땐 예외 적용을" 근로자들 "구체적 기준 달라"

"거래처와 저녁 식사 때 법인카드를 쓴다는 건 결국 회사가 승인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접대 자리도 결국 근로시간 아닌가요?"(기업 인사 담당자)

"현실적으로 그렇다, 아니다고 답하기 어렵네요. 나중에 접대를 많이 한 직원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등 분쟁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경총 관계자)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열린 '근로시간 단축' 설명회장엔 기업 인사 담당자 100명이 넘게 몰려 빈자리가 없었다. 비슷한 시간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한국능률협회컨설팅·대한상의 주최 설명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날 두 경제단체가 설명회를 열 만큼, '주 52시간 근로제'를 앞둔 산업 현장은 긴장과 혼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날 누구도 현장의 목소리에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정부가 이날 '주 52시간 근무제' 위반에 대한 단속·처벌을 6개월 유예했지만, 인사 담당자들은 "지금 상태에선 본질적으로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6개월 후에도 똑같은 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경영계뿐 아니라 근로자들도 "시행 시기를 늦추더라도 보완 입법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주 52시간 근무제 이렇게 바꿔달라… 산업 현장의 목소리
①"노사 합의하면 연장근로 늘릴 수 있어야"

직원 수 400여명인 자동차 부품 전문 S사 기획·인사팀은 요즘 노조와 1주일에 두세 차례 회의한다. 노조는 주 52시간제 시행 후 줄어드는 수당 보전을 요구 중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근로자들은 더 일하고 싶고, 회사도 일감을 더 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고 했다. 기업인과 근로자들은 5개 업종을 제외하면 무조건 '주 52시간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 근로자가 "더 일하겠다"고 해도 안 된다. 설명회 참석자들은 "노사가 합의하면 12시간으로 묶어 놓은 연장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②"모호한 근로시간, 구체적 가이드라인 내놔야"

경총 설명회장에서 한 참석자는 "출장 중 이동시간은 근무시간에서 제외하기로 노사가 합의했고, 노무사도 괜찮다고 했는데…"라고 물었다. 답변에 나선 김영완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일정 부분 근로시간에 포함해야 한다. 만약 분쟁이 생긴다면 케이스마다 다를 것 같다"고 했다. 설명회장이 웅성거렸다. 이어 대기업 인사 담당자가 "해외 출장을 위해 주말에 비행기를 탔으면, 몇 시간을 근무로 넣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강연자는 "모호하다"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한 중견그룹 인사 담당자는 "모든 상황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없지만, 최대한 구체적 사안에 대해 가이드는 마련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범법자만 대거 양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정호석 노무사는 "근로 시간 입증 책임은 회사에 있다. 일단 관련 서류를 철저하게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③"탄력근무제 등 유연근무제 확대해야"

일부 업종은 일감이 계절이나 시황, 프로젝트에 따라 특정 기간에 몰리는 경우가 많다. 이때마다 사람을 더 뽑기도 어렵다. 대신 잔업이나 주말 특근을 통해 물량을 댄다. 한 기계부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원하는 직원들에 한해서라도 야근·특근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사고 예방을 위해 공장 설비를 두세 달씩 세우고 신속히 정비해야 하는 석유화학·정유·철강 등 장치산업에선 "근로자가 동의하고 노동부 장관이 인가하면 초과근무(인가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한 IT업체 연구개발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데,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한순간 기술력이 처지면 못 따라잡는다"고 했다.

④근로자 "일만 하고 보상도 못 받는 편법 없애야"

근로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소와 정작 일은 하고도 보상조차 못 받는 '무상근로'를 우려한다. 한 대형병원 근무자는 "편법 근무에 대해선 강력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며 "구체적 기준부터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며 예외 업종을 대폭 축소한 것은 '예외'를 이유로 사측이 근로자에게 불리한 근무를 강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한 대기업 관계자는 "요즘은 노조가 워낙 강해 근로자들이 원하지 않는 것은 할 수 없다"며 "근로자와 회사 모두가 원하는 것을 법 때문에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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