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6.22 00:16

웨스 앤더슨 감독 신작 '개들의 섬'… 촬영만 3년 걸린 실사 애니메이션

눈을 깜박거리는 시간도 아깝다. 매 초 바뀌는 장면 하나하나 모두 벽에 걸어두고 싶을 지경이다. 21일 개봉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실사 애니메이션 '개들의 섬'은 스타일을 계속 쌓아올리다 보면 단단한 성(城)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찍이 '로열 테넌바움'(2001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년) 같은 영화를 통해 눈부신 화면이나 배경이 몇 마디 대사보다도 날카롭게 관객을 붙들 수 있음을 보여준 앤더슨 감독이다. '개들의 섬'에서 앤더슨 감독은 기괴하고도 환상적인 그만의 미학 세계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촬영에만 3년 넘게 걸렸다. 눈꼽만 한 디테일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짜낸 몇몇 화면에선 소름이 돋는다. 집착 없이는 집대성(集大成)도 없는 것이다.

배경은 일본에 있는 상상 속 미래 도시 메가사키시(市)다. 도시 전체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강아지 독감이 퍼지자 고바야시 시장은 개들을 모조리 쓰레기 섬으로 추방한다. 섬에 버려진 개들은 굶고 병들어 서로를 물어뜯고 싸우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의 조카인 소년 아타리가 섬에 찾아와 "충견 스파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개들의 섬'은 우울하고 절망적인 가상의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하지만 장면 하나하나는 뜯어서 간직하고 싶을 만큼 귀엽고 예쁘다.
이 험하고 불균형한 세상에서 웨스 앤더슨 감독은 비틀린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개들의 섬'은 우울하고 절망적인 가상의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하지만 장면 하나하나는 뜯어서 간직하고 싶을 만큼 귀엽고 예쁘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이 영화는 돛단배 같아서 풍자라는 노로 움직인다. 이 작품에서 사람이 하는 말은 종종 소리(sound) 그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개들은 영어로, 사람은 일본어로 말하지만 대사 상당수엔 자막이 따라붙지 않는다. 말은 그렇게 스치는 음악이나 공중에 흩어지는 연기처럼 소비된다. 앤더슨 감독은 자막이 화면의 미학을 해친다는 이유로 최대한 줄이려 했다고 한다. 거꾸로 해석하면 그의 영화에선 화면 구성이나 미장센의 완성이 대사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메시지는 오히려 화면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버려진 유리병이 쌓여 만들어진 동굴은 뜻밖에도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멀리서 내려다본 쓰레기 섬은 노을에 잠긴 듯 아름다워 보인다. 군중이 빽빽하게 모인 거대한 체육관, 티끌 하나 없는 일본 선술집과 실험실, 검댕이 잔뜩 묻고 엉킨 개들의 솜털까지…. 장면 하나하나가 유리 공예처럼 섬세하지만 여기에 실린 목소리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종종 과격하고 또 날카롭다. 어떤 이는 이런 점 때문에 이 영화를 반(反)트럼프 이야기 혹은 극우파가 득실대는 유럽 현실을 빗댄 우화로 읽기도 한다. 그러나 관객은 굳이 이런 해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감독은 소년이 사랑하는 개를 찾아나서며 겪는 모험담을 세상 그 누구보다 비효율적 방식으로 한 땀 한 땀 이어 붙이는 데 집중했다. 관객은 그 지독한 아름다움을 그저 경탄하며 즐기면 되는 것이다.

일본 문화를 바라보는 눈이 보편적 서양인의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쉽다. 만화영화나 목판화 우키요에(浮世繪)처럼 독특한 일본 문화에 오랫동안 열광해왔다는 감독의 또렷한 취향이 한껏 반영됐고, 덕분에 영화는 남다른 매력을 과시한다. 또한 바로 그 점에서 감독이 붙들린 오리엔탈리즘이란 덫을 금방 알아차릴 수도 있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감독상)을 받았다.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