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자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김희용 옮김|민음사
전 2권|각 권 1만5000원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47)의 첫 장편소설 '동조자(The Sympathizer)'는 2016년 미국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미국 문학에선 처음으로 베트남 전쟁을 베트남 지식인의 관점에서 조명했다는 평을 받았다. 국제 더블린 문학상을 비롯해 8개 문학상을 더 받았다. 전쟁 소설과 스파이 소설, 부조리(不條理) 소설이 뒤엉킨 가운데 풍자의 웃음도 번득이는 소설이다. 작가는 베트남에서 태어났지만 1975년 사이공 함락 이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고, 현재 남부 캘리포니아 대학의 영문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소설은 익명의 주인공 '나'가 진술서를 작성하면서 시작한다.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CIA(미국 중앙정보국) 비밀요원,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 아마 그리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두 마음의 남자이기도 합니다."
화자 '나'는 숱한 이중성이 혼재된 삶을 겪어왔다. 우선, 그는 프랑스인 사제(司祭)가 북베트남 소녀와의 사이에 낳은 혼혈아였다. '나'의 인생은 이중생활의 연속으로 이어졌다. 미국 CIA 요원과 함께 베트콩을 취조하는 남베트남의 정보 장교로 활동하지만, 그전에 이미 북베트남이 사이공에 심어놓은 고정간첩이었다.
'나'의 우정 또한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한 친구는 북베트남의 핵심 공산당원으로 '나'에게 지령을 내리고, 또 다른 친구는 아버지를 처형한 공산당을 증오하면서 남베트남 공수부대원으로 활동한다. '나'는 두 친구의 중간에서 양쪽을 오가는 '동조자'였다. 외세의 침략에 분노한 민족주의자였지만, 동시에 서양 문화에 매료된 자유주의자였다. 역사는 반드시 선악 이분법으로만 볼 수 없다는 입장이기에 "헤겔이 말했듯이 비극은 옳음과 그름이 아니라 옳음과 옳음 사이의 갈등이었고, 이것은 역사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우리 중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딜레마였습니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나'의 이중생활은 전쟁이 끝나도 멈추지 못했다. 그는 사이공이 함락된 뒤 그가 모시던 남베트남 장군과 함께 미군 수송기로 괌을 거쳐 미국 본토에 정착했다. 북베트남 공산당이 '나'로 하여금 미국에 체류하는 반혁명분자들을 감시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전반부는 '나'가 사이공 탈출 이후 재미(在美) 베트남 지식인이자, 북베트남의 스파이로 살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식인으로서 '나'는 미국 사회의 베트남 전쟁 인식에 거부감을 느낀다. 미군을 비난한 할리우드의 반전(反戰) 영화 '지옥의 묵시록'조차 베트남 민중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미국인을 위로하기 위한 전쟁의 재현'이라고 깎아내린다. 그런 영화에서도 베트남 사람은 발언권을 얻지 못한 채 그저 학살의 대상으로만 그려진다는 것.
이 소설의 후반부는 '나'가 우여곡절 끝에 공산화된 조국에 잠입했다가 체포돼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면서 겪는 고초를 다룬다. '나'는 수용소에서 1년 동안 진술서 작성에 매달린다. '나'가 북베트남의 비밀 요원이었다는 주장이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나'는 "독립과 자유를 위해 투쟁한 혁명이 '아무것도 아닌 것'만도 못한 것이 된 농담"을 깨닫는다. 이 부분부터 소설은 기괴한 부조리극처럼 전개된다. 사상 개조 과정까지 겪은 뒤 우여곡절 끝에 풀려난 '나'는 '보트 피플'이 돼 조국을 탈출한다. 소설은 망망대해로 가는 '나'가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외치면서 끝난다.
이 소설은 베트남 전쟁을 편협한 민족주의와 냉전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제3의 시점에서 보려고 한다. 작가는 책 뒤에 실린 인터뷰를 통해 "베트남인들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스스로에게 한 짓에 대해 책임이 있다"며 "나는 그 책임을 외면하고, 전적으로 미국인들이나 프랑스인들에게만 죄를 전가하고 싶지는 않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피해자들일뿐 아니라 가해자들이기도 하다"며 "우리는 어떤 식으로 '우리가 스스로를 학대했는지'를 철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