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6.28 03:00 | 수정 : 2018.06.28 10:37

佛 요리·제과학교 졸업한 이봉천씨
유럽·美·日 유명 식당서 일한 뒤 어머니 운영하던 부산 한식당 합류

'대학에서 음식 관련 공부를 한 뒤 외국 유명 요리학교에서 유학한다. 세계적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고 귀국해 서울 특급호텔이나 대형 외식기업에 취직하든지 식당을 차린다. 값비싸고 화려한 서양 요리로 명성을 얻는다….' 소위 '스타 셰프'들의 엘리트 코스는 대개 이렇다. 부산 출신 요리사 이봉천(36)씨도 이 코스를 밟았지만 마지막이 달랐다. 그가 취직한 곳은 부산에 있는 어머니의 보쌈집이었다.

이씨의 어머니 주미(61)씨는 부산 동래구에서 돼지보쌈을 주 메뉴로 하는 한식당을 운영했다. "어려서부터 요리하길 좋아했어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그림보다 요리 배우러 더 많이 다녔어요. 아들 둘 대학 들어가고 여유가 생기면서 식당을 열었어요. 막연한 꿈만 가지고 아무 정보 없이 식당업에 뛰어들었어요. 얼마나 힘든지 알았으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주씨는 올 1월 귀국한 아들에게 "같이 식당을 하자고 꼬셨다"고 했다.

15년 가까이 한식을 해온 어머니 주미씨와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운 아들 이봉천씨가 함께 만든 음식을 들고 나란히 섰다. 이씨는 “어머니가 원래 내던 음식이 더 나은 것 같다”고 했고, 주씨는 “아들에게서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요리하는 게 중요하단 걸 배운다”며 서로 치켜세웠다.
15년 가까이 한식을 해온 어머니 주미씨와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운 아들 이봉천씨가 함께 만든 음식을 들고 나란히 섰다. 이씨는 “어머니가 원래 내던 음식이 더 나은 것 같다”고 했고, 주씨는 “아들에게서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요리하는 게 중요하단 걸 배운다”며 서로 치켜세웠다. /김동환 기자
이씨는 경희대 외식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3년 동안 프랑스 알랭 뒤카스 요리학교와 벨루에 콩세이 제과학교를 졸업하고 파리에 있는 기 사부아(미쉐린 3스타)·파비용 르두아앵(3스타), 스페인 마르틴 베라사테기(3스타),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누(3스타)·만레사(1스타), 일본 오사카 하지메(3스타)에서 수련했다. 쉬는 주말에도 더 배우고 싶어서 다른 식당에서 보수를 받지 않고 일했다. 그러나 이씨는 "보쌈집에서 일하라"는 어머니 제안을 받아들였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어요. 하지만 어머니 음식을 좋아했고 어머니 식당이 자랑스러웠어요. 어머니의 음식에 손을 살짝 얹어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의기투합한 어머니와 아들은 식당을 싹 수리하고 이름을 '봉식당'으로 바꿨다. '봉'은 이씨 이름에서 따온 글자이기도 하고 프랑스어로 '좋다(bon)'란 뜻이기도 하다. 음식은 어머니 주씨가 원래 내던 맛과 방식을 기본으로 하되 이씨가 경험하고 체득한 레스토랑들의 테크닉으로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언뜻 보기에 두 모자가 만든 음식은 일반 한식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골들도 음식이 달라졌는지 잘 모를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맛을 보면 차이가 드러난다.

돼지고기 보쌈이 대표적이다. 어머니 주씨는 그동안 보쌈용 돼지고기를 삶아 냈다. 아들 이씨는 같은 돼지고기 부위를 쓰지만 삶지 않는다. 양념에 하루 재운 돼지고기를 스모커(smoker)에 4시간 훈연(燻煙)하고 다시 오븐에서 2시간 동안 약한 불에 천천히 굽는다. 훈연 과정을 거치며 바비큐 같은 불 냄새가 더해지고 오븐에 구워 기름이 빠져, 삶았을 때보다 덜 느끼하다. 어머니 주씨는 "삶은 돼지고기는 식으면 느끼한데, 아들 방식으로 구우니 식어도 맛이 있다"고 했다.

소고기는 '수비드(sous-vide) 방식'으로 익힌다. '수비드'란 고기를 진공포장한 뒤 열탕에서 오랫동안 익히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익히면 고기가 퍽퍽하지 않고 육즙이 촉촉해진다.

어머니 주씨는 "주방에서 아들과 함께 일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고 했다. "음식은 손맛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아들의 조리법을 보면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면서 새로운 맛이 나더군요." 아들 이씨는 "음식에 들이는 정성은 한식이나 양식이나 같다"고 했다.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에 아들의 체계적이고 과학적 조리 기술이 더해진 두 모자의 요리에서 한식의 미래를 엿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