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안성례(37)씨는 삼남매를 키우면서도 육아 도우미를 쓰지 않는다. '10 to 5(텐 투 파이브·오전 10시 출근, 오후 5시 퇴근)' 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낸 뒤 출근할 수 있고, 어린이집 수업을 마친 막내딸(5)과 손 잡고 퇴근한다. 야근과 회식은 일절 없다. 아이들이 아프거나 집에 갑자기 볼일이 생기면 회사에서는 충분히 사정을 봐준다. 안씨는 "일보다는 육아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엄마들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최고의 직장"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삼성생명 '서울 강남리젤지점'에서 2016년부터 보험컨설턴트(FC)로 일하고 있다. 보통 보험설계사로 불리는 직업이다.
◇육아도우미 없이 삼남매 키우는 워킹맘
리젤(Life-angel·라이프 에인절의 약어)지점은 삼성생명의 워킹맘 특화 지점이다. 2016년 초 서울 2개 지점으로 출발해 현재 전국 10개 지점에서 250여 명 FC가 일하고 있다. 리젤지점에서 일하는 FC들은 거의 대부분 워킹맘이다. 리젤지점은 일반 지점보다 아침 조회 시간이 1시간가량 늦고, 일과 시간에도 육아 관련 일정이 있으면 일을 볼 수 있게끔 배려해준다. 워킹맘 친화적인 근무 환경 때문에 리젤지점은 출산 이후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경단녀)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안씨는 아이를 낳기 전 대학병원 간호조무사로 일했다. 2006년 첫아이 출산과 함께 일을 그만뒀다. 이후 셋째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한 2016년까지 10년간 전업주부였다. 육아에 숨통이 트이면서 안씨는 다시 일을 해보려고 3개월간 공부해 '병원 코디네이터' 자격증을 취득했다. 코디네이터는 병원에서 진료 상담을 해주는 직업이다. 병원 근무 경력을 살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도전한 일이었다. 하지만 주말에도 일할 때가 많고, 근무시간이 유동적이지 않다 보니 육아와 병행하기에는 무리였다. 안씨는 "말을 잘하는 편도 아니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어서 보험 영업을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육아와 병행이 가능하다는 말에 설계사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한 지 2년이 된 현재 안씨의 업무 만족도는 매우 높다. 평소 잘 몰랐던 금융 지식을 쌓게 됐고, 집에만 있다가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았다. 무엇보다 업무가 아이들을 돌보는 데 거의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 월 200만원 넘는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안씨는 "오후 4시 넘어 퇴근해 5시쯤 셋째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온다"며 "파트타임 일자리에 비해서 수입도 많고, 근무시간도 훨씬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워킹맘 이탈 막기 위한 보험사들의 친육아 지점
다른 보험사들도 삼성생명 리젤지점과 같은 특화 지점을 운영하며 워킹맘 근무 환경 개선에 힘쓰고 있다. 여성 보험설계사 비율이 높고, 여성 중 30~40대가 가장 많다 보니 이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작년말기준 보험설계사 여성 비중은 76.3%(9만3219명)이며, 여성 중 30~40대 비중은 52%(4만8000명)에 달한다. 워킹맘 설계사들은 육아와 영업에 대한 부담으로 오래 직장을 다니는 비율이 낮은 편이다. 여성 설계사 중 5년 이상 일한 사람은 전체의 36%(3만3454명)에 그친다.
교보생명과 한화생명도 워킹맘 특화 지점을 잘 운영하는 곳으로 꼽힌다. 2년 전부터 교보생명 서울 퀸(Queen)FP지점에서 일하는 장선경(42)씨는 초등학교 3학년, 6학년 자녀를 둔 엄마다. 회사원이던 장씨는 출산 후 11년을 전업주부로 살았다. 교보생명 퀸FP지점도 근무시간을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 정도로 운영하기 때문에 장씨는 큰 고민 없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한때 일본계 회사 인사팀장으로 근무했던 강현주(38)씨는 한화생명 강남리즈지점 소속 라이프 컨설턴트(LC)다. 오전 9시 아들(3)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해도 여유가 있다. 강씨는 "퇴사 후 1년 가까이 육아에 전념했지만, 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힘들었다"며 "하지만 시간에 쫓기며 육아를 할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전문성을 쌓으며 워킹맘을 적극 배려해주는 일터를 찾게 돼 기쁜 마음으로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