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덮으면 한 단어만 떠오른다. '감사.'
윤석언(49)씨는 일반적 잣대로 보면 감사할 일이 거의 없다. 재미교포인 그는 스물세 살 때인 1991년 큰 교통사고로 목 이하 전신이 마비됐다. 의식불명 4개월, 중환자실 반년…. 깨어난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했지만 그 이상의 기적은 없었다.
27년째 전신마비 상태로 현재 미국 동부 메릴랜드주 요양원에서 24시간 누워 있다. 성대를 다쳐서 대화도 원활치 못하다. 2015년 인터넷으로 강의하는 월드미션대에 목회학 석사 과정에 진학했다. 예비 목회자·선교사로서 묵상해온 이야기를 모아 최근 '꼼짝할 수 없는 내게 오셔서'(포이에마)를 펴냈다.
책에는 '마비된 몸이라는 감옥에 갇혀 사는' 삶의 고통이 생생히 그려진다. 대소변 처리는 물론 이발이나 세수, 심지어 머리 긁는 일까지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가장 무서운 것이 얼굴에 내려앉는 파리란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노동이다. 눈동자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특수 스티커 안경을 끼고 컴퓨터 자판 글자에 시선을 1초 이상 고정하면 한 글자가 입력된다. '안녕' 두 글자를 치려면 'ㅇㅏㄴㄴㅕㅇ' 자음·모음 한 개당 1초씩 최소 6초가 걸린다. "이 책은 한 글자도 낭비할 수 없다"는 남종성 목사(미국 월드미션대 신약학 교수)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럼에도 그는 책에서 고마운 일들을 열거한다. 매일 저녁을 싸와서 먹여주는 어머니, 매주 주일예배에 데려다 주는 분, 냉면을 만들어 오시는 권사님, 10여년째 자원봉사로 자신을 챙겨주는 간호사…. 한번은 간호사에게 대소변 치우는 것이 싫지 않으냐고 물었다. 간호사가 답했다. "머리 만지기 싫어하는 미용사, 밀가루 만지기 싫어하는 제빵사, 기저귀 만지기 싫어하는 간호사라면 너무 괴로운 인생을 살 것 같지 않아요?"
윤씨는 고마운 분들을 보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을 떠올린다. 윤씨를 돕는 에스더 권 선교사는 "세상엔 감사해야 할 일이 있는데 감사하지 않는 사람, 감사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 감사할 만한 일이 없는데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윤석언 형제는 세 번째"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