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이번에는 대기업 집단의 공익 법인 거래 행태를 문제 삼으며 대기업 압박에 나섰다. 재계에선 과도한 대기업 길들이기라고 반발해 논란이 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1일 국내 대기업 집단이 소유한 165개 공익 법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공정위는 주요 대기업 집단의 과거 공익 법인 거래를 '악용 사례'라고 지목하고,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며 규제를 예고했다.
◇공정위 "공익 법인, 재벌들이 악용" 결론
공정위의 이날 발표를 보면 '재벌들이 공익 법인을 지배력 유지와 경영권 승계, 세금 줄이기, 내부 거래에 다방면으로 활용한다'는 인상을 준다. 대기업 집단 소속 공익 법인 165개 가운데 총수가 있는 재벌 그룹 44개가 가진 공익 법인이 149개로 90% 이상이었다. 공익 법인은 총수 일가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에 있었다. 대기업 집단 소속 공익 법인 가운데 동일인, 친족, 계열사 임원 등 특수 관계인이 이사로 참여한 경우가 165개 중 138개(83.6%)였고, 총수와 특수 관계인이 공익 법인의 대표인 경우는 98개(59.4%)였다.
대기업 집단 소속 공익 법인 주식 보유 비중은 21%가 넘었고, 특히 자체 계열사 주식 보유 비중이 16.2%로 주식 보유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주식들이 수익에 기여한 비중은 1.15%에 머물렀다. 또한 대기업 집단 소속 공익 법인 165개 중 112개가 출연 주식에 대해 상속 증여세를 면제받았다. 공익 법인들은 계열사 주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때 100% 찬성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165개 공익 법인 중 60%에 해당하는 100개가 내부 거래를 했다.
◇재벌 공익 법인 실거래 사례 특정해 '악용' 지적
공정위는 대기업 집단 소속 공익 법인들이 지배력 확장과 사익 편취에 동원됐다며 사례까지 적시했다. 익명으로 적었지만 어떤 기업인지 쉽게 특정되는 내용이었다.
공정위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사장인 삼성생명공익재단이 2016년 2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불거진 순환 출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물산 주식 200만 주를 사들인 것에 대해 지배력 유지를 위한 행위라고 했다. 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이사장인 정석인하학원이 작년 3월 계열사에서 현금을 지원받아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은 계열사 우회 지원에 해당한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이 총수 일가 지분율이 각각 80%, 43.4%에 달했던 이노션과 글로비스 지분의 일부를 현대차 정몽구재단에 넘겨 일감 몰아주기 기준(30%) 이하로 지분을 낮춘 것은 공익 법인을 규제 회피 수단으로 악용한 사례라고 했다. 이 밖에 박삼구 금호 회장이 이사장인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그룹 계열사 주식을 거래한 것은 경영권 분쟁을 지원하고 부실 계열사를 지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고발이나 제재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례 제시 자체가 대기업에 대한 압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공정위 주장 과장, 확대 해석" 반발
재계는 공정위 주장이 사실관계도 맞지 않고 공익 재단을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주장도 과도한 해석이라는 입장이다. 대한항공은 "(정석인하학원이) 여유 자금 한도에서 우량 자산(대한항공 유상증자 참여)을 취득한 것"이라며 "5년간 배당을 받지 못했지만 투자 당시 항공업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관들의 전망이 있었고, 올해엔 대한항공이 배당해 이익을 봤다"고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공정위의 조사를 잘 받았고, 문제는 없는 걸로 알고 있다"며 "부실 계열사 지원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삼성과 현대차는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은 "공정위는 국내 공익 법인의 주식 비중이 지나치게 높고,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다고 하지만, 미국도 우리와 비슷하다"며 "(공정위가) 불법·편법이라는 사례도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고 했다. 공익 법인을 운영하는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일부 공익 법인의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전체를 싸잡아 몰아가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