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브라이언 페이건 지음|정미나 옮김|을유문화사|568쪽|1만8900원
식량을 얻기 위한 인류의 활동 중 수렵과 채집은 긴 역사를 거치며 목축과 농업으로 바뀌었다. 야생에서 직접 식량을 확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면서 인류는 문명을 태동시켰다. 반면 '고기잡이'(피싱·fishing)는 지금도 과거의 원초적인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다. 거친 바다에서 낚시나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모습은 수만 년 전 어부들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저자는 남미와 동아시아, 유럽 등 세계 곳곳에 남아 있는 유적을 통해 인류가 바다를 주요 단백질 공급원으로 활용해왔음을 보여준다. 전 세계 어디나 널려 있는 조개무지 유적도 유력한 증거. 남자들이 하는 사냥은 성공 확률이 낮았기에, 여자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개펄로 나갔다.
고고학자인 저자는 '여기는 2만 년 전 베링 육교다' '여기는 1845년 경 메인만 근해 조르주뱅크다' 식으로 전체 22개 장마다 전혀 다른 시간대와 장소로 우리를 안내한다. 마치 눈으로 본 듯 써 내려간 문장을 통해 역사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고기잡이의 숨겨진 역사가 되살아난다. 고고학과 인류학, 지리학 지식을 총동원해 빚어낸 노(老)학자의 상상력 덕분에 픽션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대목도 많다.
인류는 현재 역사상 처음으로 바다가 고갈될지 모르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태평양 남동부 안초베타(페루 멸치)는 이미 씨가 말랐으며, 대서양 청어와 대서양 북동부 대구 역시 같은 처지다. 저자는 소중한 바다를 지키기 위해 지속 가능한 어업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낚시를 예술처럼 여겼던 옛 어부들의 자세에 존경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