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7.02 16:15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아름다운 그 모습을 자꾸만 보고 싶네.
그 누구나 한 번 보면 자꾸만 보고 있네… 모두 사랑하네 나도 사랑하네”

1970년대 중후반, 정작 제목 보다 더 유명했던 이 노래의 별명은 무엇이었을까? ‘3천만의 애창곡’이었다. 그때니까 3천만이었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이라면 ‘5천만의’ 노래일 터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도 K팝 메들리로 울려 퍼졌던 ‘미인’. 바로 신중현의 대 히트곡이다. 올해 여든으로 하얀 장발을 휘날리며 아직도 현역인 그는 한국 록 음악의 ‘대부’로 불린다. 국내에서 첫 성공적인 로커라는 명성뿐만 아니라, 록을 우리 것으로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5060과 그 너머는 물론 2030 세대에서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만들고 직접 불렀거나, 김추자와 펄시스터즈, 이선희, 윤종신, 원더걸즈 등 톱 아티스트들이 부른 노래는 500곡이 넘는다.

뮤지컬 ‘미인’은 신중현의 대표작 ‘미인’과 함께 23곡을 일제강점기 젊은이들의 삶에 엮어내 오는 22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다’. 노래 그대로 자꾸만 보고 싶어질 것 같은 주크박스 뮤지컬이었다. 우선 1930년대 무성영화관 하륜관과 변사라는 소재부터가 독특했다. 30년대로 옮겨진 노래적 배경에서 70년대 추억의 명곡들이 주는 청각적 감흥에다, 스윙재즈며 고고댄스, 현대 뮤지컬 안무까지 시각적 감흥에도 흠뻑 젖어들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시와 노래, 영화로 캄캄한 현실을 밝히고자 했던 변사 강호를 비롯한 청춘들의 독립에 대한 갈망과 그 열연이 감동이었다. 강호의 친형이자 동경대 유학생으로 인텔리인 강산. 강호를 친형처럼 돌보는 건달 두치. 시대를 고뇌하는 시인이며 가수인 신여성 병연. 이들이 독립운동자금 조성을 위해 하륜관 지하에서 비밀모임을 가질 때 ‘커피 한잔’이 나온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 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 구려. 팔분이 지나고 구분이 오네 일 분만 지나면 나는 가요…”.

아름다운 이곳에 자랑스러운 이곳에 살리라. 

다방에서 애타게 애인을 기다리는 ‘커피 한 잔’이 하륜관에서는 속이 타들어가는 듯 긴장된 당시 상황으로 고스란히 다가왔다. 여러 가수가 히트했던 곡들이 극중 각 장면들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느냐가 주크박스 뮤지컬 성공의 관건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점에서 매 장면마다 녹아든 곡들이 객석의 가슴을 파고들며 흔들기에 충분했다. 특히 강호가 고문 끝에 죽은 형의 유골함을 들고 ‘봄비’와 ‘거짓말’을 절규하는 가운데 1막이 내렸을 때는 슬픔의 클라이맥스가 객석을 덮치는 것 같았다. 하륜관이 재개관됐을 때 강호가 친구를 그리워하며 부른 ‘미련’은 절절함 그 자체였다. “내 마음이 가는 그곳에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갈 수 없는 먼 곳이기에 그리움만 더하는 사람…”

곡들이 이어질 때마다 무대 위 배우들의 사인이 없어도 객석에서는 약속한 듯이 손뼉 장단이 맞춰졌다. 감동의 압권은 뮤지컬의 대미였다. 절망을 떨치고 일어난 희망이요, 죽음을 겁내지 않은 생명의 찬가가 터져 나온 것이다. 일본 천황에 대한 찬양가를 부르라고 총을 들이대도 강호와 그 친구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경성방송 마이크 앞에서 목숨을 걸고 ‘아름다운 강산’을 불러 젖힌다.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부풀은 내 마음 나뭇잎 푸르게 강물도 푸르게 아름다운 이곳에 내가 있고 네가 있네 손잡고 가보자 달려보자 저 광야로 우리들 모여서 말해보자 새 희망을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부풀은 내 마음 우리는 이 땅 위에 우리는 태어나고 아름다운 이곳에 자랑스러운 이곳에 살리라…”.

1막의 캄캄한 절망 뒤에 2막이 환한 희망으로 막을 내린 후, 극장을 나서 밤거리로 향하는 내 발 걸음이 절로 씩씩해졌다. 옆의 20대들은 더욱 그렇게 보였다. 좋은 예술작품이 주는 감동에서 나오는, 세대를 아우르는 힘 덕분이었다.


*취재협조 및 자료제공 : 클립서비스, 홍컴퍼니(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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