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요즘 많이 쓰는 말입니다. 일상 속에서 작지만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 또는 삶에서 그러한 행복과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을 뜻하는 말입니다. 비슷한 맥락의 단어로는 2010년대 들어서 널리 사용되어왔던 '힐링(healing)'이나 2017년 무렵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일과 삶의 조화를 뜻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등이 있습니다.
'소확행'은 1990년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필집 '랑게르 한스 섬에서의 오후'에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 정의하면서 사용됐습니다. 한 마디로 내 마음대로 정의하자면 일상생활에서 찾는 소소한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개인마다 기준이 다름은 물론이지요. 제게 '소확행'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침 식사 후에 마시는 커피 한 잔, 친구들과 나누는 수다, 혼자 숨겨 놓고 먹는 워싱턴 체리 몇 알 등등 있습니다.
나의 '소확행'에 한 가지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혼자 하는 여행! 매번 다짐만 하다 끝나고 말았는데 이번에 실행하기로 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이번 여행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간다고 하면 또 같이 가자고 따라나설 사람들을 외면해 보기로 했습니다. 제일 먼저 군포시 납덕골에 있는 벽화마을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벽화가 많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한번 나서 보기로 했습니다. 동네에 있는 4호선을 타고 대야미역에서 내려 마을버스 1-2번을 타고 납덕골에서 내려 벽화마을과 반월호수를 둘러보기로 하고 전철을 탔습니다.
대야미역을 나서자 굴다리였습니다. 전철역이 굴다리로 이어지는 것도 신기했지만 맞은편에서 생각지도 않은 벽화가 낯선 이를 맞이합니다. 제목이 '도심 속에서 만나는 명화관'입니다. 어딘가 참으로 친근해 보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학교 다닐 때 미술책에서 보았던 명화들입니다. 프랑스 신안주의 화가 '조르주 피에로 쇠라'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서커스'가 보입니다.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밀레의 대표작 '이삭 줍는 여인들'도 보이고 '뜨개질 수업'도 보입니다.
조금은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이렇게 마음대로 저렇게 벽화로 만들어 놓아도 괜찮은가 싶어서입니다. 시대가 저작권에 대해 엄격한데 말입니다. 어찌 되었든 시작부터 기분이 좋습니다. 한참을 서서 대형 잉크젯 프린터로 프린트해 붙였다는 명화들을 구경하다가 보니 마을버스 1-2번이 눈에 들어옵니다. 냉큼 올라탔습니다. 이 더위에 기다리지 않고 지하철에서 나오자마자 탈 수 있다는 행운에 앞으로의 여행은 청신호가 켜졌다고 생각하니, 창밖으로 펼쳐지는 시골 풍경이 더욱더 사랑스럽습니다. 한참을 차창으로 스쳐가는 시골 풍경에 넋이 나가 있는데 기사님이 납덕골이라고 내리라 합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각양각색의 백일홍이 한들거리며 환영 인사를 보냅니다. 꽃들의 격한 환영 인사에 취해 발걸음이 저절로 꽃들에게로 다가갑니다. 유년 시절에 집마다에 있던 작은 화단에 어김없이 있던 친근한 꽃이지요, 그 꽃을 여기서 만났으니 그 반가움이야 말할 나위가 없었지요. 스마트 폰을 들고 몇 장 반갑다 찍고 나니 그제야 숯불구이 냄새가 코끝에 스밉니다. '이게 뭐야?' 싶은데도 애써 아무것도 아닌 척 둘러봅니다. 있다던 벽화는 칠월의 뜨거운 바람과 햇살에 다 날아가고 녹아버렸는지 겨우 흔적 몇 개만 보입니다. 대신 음식점들이 성업 중이었습니다. 벽화로 사람들이 모여들자 너도, 나도 음식점을 연 탓인 모양입니다.
울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동네 한 바퀴 둘러보지만 볼 게 없습니다.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반월호수로 갑니다. 그 날 이곳은 34도였다는데 기다리던 반월호수는 녹조라테였습니다. 날은 뜨거운데 시원할 거라는 예상은 빗나가고 답답합니다. 그냥 돌아서야 하나 망설이다가 이왕 온 거 30분만 걷기로 했습니다. 걷다가보니 호숫가에 세워 둔 글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잘하고 있어' 헤벌쭉 웃습니다. 날 보고 하는 말 같아서 괜스레 기분이 좋습니다. 이번엔 '스치면 인연'이 있습니다.
그 스치는 인연을 풍차가 있는 곳에서 만났습니다. 누군가 내 앞에서 환하게 웃습니다. 대야미까지 오는 전철 속에서 맞은편에 앉아 왔던 여인입니다. 나도 마주 보고 환하게 웃습니다. 여기서 또 만났다는 말도 함께 합니다. 나도 혼자였고 그녀도 혼자였습니다. 그게 마음이 통했나 봅니다. 뙤약볕을 피해서 붉은색 파라솔 아래 앉아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었습니다. 그녀가 묻습니다. 오늘은 여기고 내일은 어디로 갈 거냐고. 내일은 쉰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매일매일 이렇게 다니나 봅니다.
가벼운 얘기들을 나누다 정이 들 때쯤 일어섰습니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날 테고 그때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이것도 인연이니 밥 한번 먹자며 헤어졌습니다. 다니다 보면 어디선가 다시 만나겠지요. 그리고 다시 만나면 '잘 지냈어요?', '오늘은 어땠나요?', '당신을 다시 만나 행복하네요!' 물음표와 느낌표를 적당히 섞어서 대화를 나눌 테지요. 이렇게 인연은 늘 끝나고 또 만들어지네요.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고 또 하루가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