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8.16 13:40

‘역대급’ 폭염이 전 세계를 강타하는 올여름,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신기록을 갈아 치우며 고공 행진 중이다. 기온이 38도라고 발표하면 실제 기온은 40도가 넘는단다. 기온을 측정하는 곳은 백엽상 안이다. 백엽상은 막힌 곳이 없는 곳에 세운다. 그 속에 온도계를 넣고 재는데 잔디나 풀밭 위에 온도계 눈금이 1.5m 높이에 오도록 세운다. 그러니 도시에서 오늘이 38도라 하면 40도가 넘는다는 이야기다.

이런 날, 불 앞에 서서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주부는 땀이 이마에 샘솟듯 솟는다. 안 할 수도 없고 하기는 해야 하고 참으로 힘든 나날이다. 거기다 한낮에 달궈진 집은 저녁에는 찜질방 저리 가라다. 그렇다고 식구들 굶길 수는 없고 되도록 불을 사용하지 않는 저녁 식사를 준비할 수밖에 없다. 요즘 우리 집에 자주 하는 메뉴는 동치미 쌀국수나 쇠고기 맛 쌀국수다. 물론 냉면처럼 차게 해서 먹는다. 오늘 저녁도 쌀국수로 메뉴를 정했다.

낮은 칼로리와 담백한 맛으로 쌀국수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우리나라도 요즘 거리에 나가면 흔하게 보이는 것이 월남, 혹은 베트남식 쌀국수집이다. 맛도 있는 데다 ‘가성비’ 또한 높아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잘 알려져 있듯 쌀국수는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동남아에서 쌀국수가 발달한 것은 밀이나 메밀 같은 작물을 기르기 어려운 열대지방의 특성 때문이다. 대신 인디카 종인 안남미 쌀을 이용해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우리나라도 쌀농사를 많이 지었지만, 밀이나 메밀이 잘 자라기 때문에 굳이 비싼 쌀로 국수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내가 처음 쌀국수를 접한 것은 한 30년 가까이 된 것 같다. 베트남에 여행 갔다가 쌀국수를 만났지만 별로 맛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한다면 나온 음식이니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날 꾸역꾸역 먹었던 기억밖에 없었다. 그 쌀국수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 라오스에 갔을 때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갔더니 메뉴가 쌀국수였다. 안 먹을 수도 없고 조금만 달라고 해서 먹었는데 반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왜 그때는 맛없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국내에 들어와서도 간혹 쌀국수집이 보이면 들어가서 사 먹는 것을 넘어 나만의 쌀국수를 만들어 먹는다. 이름하야 동치미 쌀국수와 소고기 쌀국수다. 이름이야 내 멋대로 지은 것이니 아무려면 어떠랴.

1. 간편식으로 나온 쌀국수를 뜨거운 물에 6분쯤 불린다.(정수기의 뜨거운 물 사용 기준)
2. 불린 쌀국수를 찬물에 헹구고 다시 얼음물에 넣어 차게 식혀 그릇에 담는다.
3. 마트에서 파는 동치미 육수를 슬러시 형태로 살짝 얼려 붓는다.
4. 오이를 채로 썰어 올리고 게맛살이 있으면 게맛살을 오이채 길이와 두께로 갈라 올린다.
5. 깨소금을 뿌리고 김 가루를 뿌리고 달걀지단도 올린다.


여기서 달걀지단 팁 하나! 뜨거운 가스 불 켜고 한다고? 아니다. 이 더운 데 무슨. 전자레인지로 지단을 만든다. 달걀 한 개 깨트려서 흰자 노른자 분리하여 풀어 준다. 넓적한 접시 바닥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분리한 달걀, 흰자 노른자를 접시에 담고 펴준다. 다음 스프레이로 물 슉슉 서너 번 뿌린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 전자레인지 속에서 마르지나 않을까 봐. 물을 뿌렸으면 전자레인지에 넣고 1분간 돌리면 완성! 찜기가 있으면 찜기에 넣어 줘도 된다. 랩을 씌워도 좋고 본인이 편한 대로.

참으로 간단하다. 이마에 땀도 도로 들어갈 만큼 간단하다. 쌀국수 위에 올리는 고명이야 내 맘대로 올리면 그만이다. 지금이야 한여름이니 냉 쌀국수지만 날이 추워지면 이 쌀국수는 뜨거운 잔치국수 육수를 부어 먹기도 한다. 사철 날씨에 맞추어 먹을 수 있으니 이처럼 간편한 식사 준비도 없다. 떡국이야 끓여야 하지만 끓이지 않고도 떡국 맛도 낼 수 있으니 일석, 이조가 아니라 삼조, 사조다.

음식이란 어차피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음식 만드는 정석이란 것은 없다. 고추가 조선 중기에 들어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고추장이 탄생하고, 김치에 들어가 세계적인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고향을 떠나와 그 나라 음식에 스며들어 새로운 요리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게 발전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쌀국수가 백 년 이백 년이 흐르면 또 어떤 음식으로 변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음식 만드는 사람들의 정성이 가득 들어가 맛있는 음식이 되리라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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