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9.12 13:23

교편을 ​몇 년 전 접고 자유여행가가 된 친구가 있다. 물론 학교에 근무할 때도 방학마다 기간을 꽉 채워 세계 여행 맛을 만끽해 왔기에 가능한 일일 거다. 이제 여행을 다닐 시간이 더 자유로워지자, 마음 내키면 계절과 상관없이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평소 자주 만나게 되다 보니, 그만의 여행 맛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에, 나는 '동네 한 바퀴도 여행이다'라며 나만의 자유로움으로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는 자유여행가로서의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다닌다. 여기엔 다른 여행가가 가지지 않은 독특함이 있다. 일반적으로 국제 공용어나 그 나라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겠으나 그것이 아닌 것. 언어보다 더 소통하기 쉬운 언어 이전의 것을 사용해 그들과 동화되는 것. 그 나라 언어를 익혀 언제 그곳을 마음껏 다니겠느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어떤 상황이든 거기에 맞는 표정, 어감, 손이나 몸짓 등 내 몸과 마음이 따라가는 대로 의사 표시를 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 그곳 사람들도 같은 방식으로 의사소통한다는 것이다. 이는 웬만한 여행 경험으로 터득되는 일이 아니다. 그만큼 내가 그들과 가깝게 느껴야 하고, 또 나 자신이 인간적인 느낌을 내재하고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여기엔 자유로움에 대한 순수함이 묻어 있어야 한다.

룽먼석굴 비로자나불상
그동안 그의 여행 수단은 0명 단위의 소규모 여행자 모임이었다. 그가 특별하게 여기는 여행지는 아시아다. 그중에 더 애착을 가진 곳이 중국과 인도인데, 아마 그동안 10회 이상씩 다닌 모양이다. 한 번 떠나면 보통 40일 전후를 다닌다. 이번에 그가 잡은 중국 여행은 1인 자유여행가의 길이었다. 진정한 외로움과 자유로움의 극치를 맛보기 위함이리라. 이를 전하기라도 하듯, 그는 하루에도 2~3번씩 소식을 사진과 문자로 전해 온다.
 
이번 중국 여행에서는 대형 석굴에 빠진 모양이다. 중국 허난성 뤄양 룽먼석굴 비로자나불상 사진을 보내왔다. 측천무후가 지원했다고 하는데, 그녀의 인상이 불상에 남아있는 듯하다. 석굴을 만들던 사람들의 목소리와 망치 소리와 발걸음 소리들이 들리는 것을 봐선 말이다. 억지로 시킨 것이 아니라, 모두 스스로 부처가 되기 원했기에 석굴 제작에 참여했으리라 믿고 싶어지는 것은 웬일일까.

사진 찍는 순간이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 불상 앞을 먼지처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인상적이다. 불상을 만들었던 당나라 사람, 그동안 수없이 저 불상을 지나쳐간 갔던 사람,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나 스쳐 지나갈 그 많은 사람 등등 나도 그 모두와 같은 사람이라며, 그냥 지구에 왔다가 먼지가 되었다가 사라지는 그냥 사람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반드시 나도 그 사람이 되는 것을 뭐라 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저마다 무엇인 체하며 불상을 스치는 사람, 그 모두 살아있기에 그 얼마나 행복한 삶이 아니랴. 그러한 수없이 가고 오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 세상은 또 얼마나 아름답지 않겠는가. 분명 나도 ‘그중 하나다’고 중얼거려 본다.


石佛을 지나다가

언제 어디서 멈출 
저 지구에 있는 
먼지 하나 보았네
마음껏 떠다니며
룰루랄라 노래하는
날 보라고 하하거리는

심심하면 와서 놀자
짠짠 손짓도 하는
그래그래 이름 뭐니
한 발자국 다가가면
하늘하늘 하늘에 숨어 
여기야 여기 속삭이는

너도 나도 무엇인 체
지금은 그냥
살아있을 뿐이라는
언제 어디서 멈출
저 지구에 있는
먼지 하나 보았네 
  

외국에서 1달 가까이 혼자 여행을 다니는 일은 여러 어려움이 있다. 신변 안전, 여행 일정 세우기와 예약, 먹거리와 잠자리 확보하기 등등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그저 격려해 주는 일이란, 고작 소식이 오면 옆에서 북으로 장단 맞추기다. 그러나 보이는 어려움이야 충분히 극복하겠지만, 혼자 여행하는 일 중 가장 힘든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외로움이라고 한다.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누구나 심심하지 않기 위해 움직인다고 한다. 움직여야 새로움을 만나게 되고, 그 순간 자신이 새로 태어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외로움을 새로움으로 바꾸어 자신을 계속 새롭게 하는 일, 그것이 홀로 떠나는 여행의 맛일까. 무엇과 맞닥뜨려도 그 무엇과 함께 ‘우리 지금 이 세상에 함께 있다!’고 외치고 싶은 여행의 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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