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10.04 13:24

‘가방을 둘러멘~ 그 어깨가 아름다워~ 뒷모습 보면서 정신없이 걷는데’ 내가 신이 나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가사다. 통기타 가수 김세환이 부른 노래다. 우리 세대 노래이기에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이 노래를 부르다 보면 저절로 플라타너스 길이 떠오르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작고 예쁜 가방을 어깨에 메고 치맛자락을 팔랑이며 걸어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아마도 긴 머리에 미니 원피스를 입었을 테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긴 머리와 가방이 춤을 추고 있을 거다.

어깨에 가방을 멘다는 것은 젊음의 특권이고 상징이다. 만약 이 노래에서 아가씨가 가방을 어깨에 메지 않았다면 노래로서 빛을 잃었을 거다. 그렇지만 그 특권과 상징을 언제까지나 지니고 사는 사람은 없다. 어느 순간 가방이 들린 위치는 서서히 바뀌어 간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아래로 내려온다. 왼팔에 걸고 우아하게 다니다가 끝내는 그 가방은 손끝에 매달려 달랑거리거나 등에 둘러메거나 한다. 이때쯤이면 나이가 들었다는 거다.

가방의 종착지는 등에 메는 것이다. 안 보이는 곳으로 보냈으니 이것도 이별은 이별이다. 이별이란 중년을 지나 노년으로 접어드는 우리들에게선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나이다. 크건 작건, 사람이건 아니건 관계가 없다.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일은 가방과의 이별이다. 하이힐과는 이미 몇 년 전에 이별했지만, 지금은 가방과의 이별 직전이다. 요즘이 어느 세월인데 가방 타령이나 하겠지만 이별이란 아주 사소한 것도 때로는 슬프다. 그 슬픈 장면이 내 앞에 다가올 때는 더욱 그렇다. 매주 마지막 토요일은 마음 맞는 동창 몇이 삼십 년이 넘게 이어지는 동창회 모임이 있는 날이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어김없이 마지막 토요일에 모인 것이다. 늘 그러하듯 한 달에 한 번 보는 반가운 얼굴들 앞에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떠들썩하게 시작됐다. 60대의 대화 주제가 어김없이 건강 문제로 떠오르다가 늘어 난 주름살과 흰 머리칼로 주제가 바뀌어 갔다. 염색하지 않겠다고 흰머리를 휘날리며 다니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끝까지 염색을 고집하는 친구가 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가는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그것은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때가 있다. 그 필수를 오늘 만났다. 서너 시간을 수다를 떨고 일어날 때, 친구들이 작은 배낭을 어깨에 메고 있다. 한 명도 아니고 둘이나. 어안이 벙벙해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말 ‘그거 메고 왔어?’다. 누구랄 것도 없이 여자라면 멋스러운 가방을 찾아 발품을 판다. 여행 가면 가죽 가방 하나 좋은 것 마련하겠다고 가방 가게를 기웃대다 결국 크게 질러 버리던 게 엊그제다. 하도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나를 보며 하하 웃더니 ‘야, 이젠 멋이고 뭐고 필요 없다. 편한 게 최고야.’ 한다. 이게 그 애 입에서 나올 소린가? 모델 뺨치게 가꾸고 다니던 친구 입에서.

하긴 다른 사람을 말해서 무엇 하랴! 나 또한 변해 가는 중인걸. 키 작다는 걸 핑계 삼아 유난히 높던 굽을 씩씩하게 신고 다니던 나다. 앙증맞은 금속 장식이 달려있던 굽 높은 빨간 구두는 나만의 자존심이었다. 그 자존심과는 몇 년 전에 이별하고 요즘은 운동화나 낮은 굽의 편리화를 신고 다닌다. 거기다 보태 중년 내내 팔에 걸치고 다니던 핸드백과도 이별했다. 명품이라고 거액을 주고 사들었던 가방도 장롱에서 나오지 못해 햇빛을 못 본 지 오래다.

요즘은 주로 끈 달린 손가방을 들고 다닌다. 소위 클러치백이라 부른다. 이유는 목 디스크가 있어 무거운 가방들은 들지 못한다. 무거운 가죽 가방을 들면 얼마 가지 않아 목에 통증을 불러온다. 클러치백을 써 보니 가볍기도 하고 혹여 나갔다가 무거운 짐이라도 들고 올 일이 생겨도 좋았다. 끈 있는 클러치백이라 손목에 걸치면 그만이었다. 하여 어디선가 가볍고 예쁜 클러치백을 만나면 그의 유혹에 홀라당 잘도 넘어간다.

비록 다시 못 올 젊은 시절이지만 슬프지 않다. 지금은 지금대로 낭만과 추억을 쌓으면 그만이다. 내게서 멀어져 버린 그대가 어찌 연인만 있겠는가. 그 대상이 한낱 구두나 핸드백과의 이별이라도 괜찮다. 우리가 누구인가? 세끼 밥도 챙겨 먹기 힘든 세월을 넘어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때문에 밤 11시까지 학교에서 30촉 백열등 아래서 야간학습을 하면서 넘었다. 어디 그뿐인가? 대란(?)이란 대란을 다 넘어왔는데 이까짓 일에 슬퍼하거나 실망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헬조선’이라 칭하며 살기 힘든 나라라고 하지만 난 누가 뭐래도 이 나라가 좋다. 당연히 당당하고 씩씩한 대한민국 아줌마다. 아줌마로 사는데 그까짓 하이힐과 가죽 가방 정도와 이별하는 것이 무슨 큰일이라고. 아직도 한참 남은 생, 가볍고 편한 신발을 신고 클러치백이 아니라 친구들처럼 가방을 등에 둘러멘다고 해도 괜찮다. 이처럼 멋진 세상에, 가볍게, 홀가분하게 뛰어 들 수만 있다면 어떤 차림이라도 좋다.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