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10.05 14:56

“팔딱팔딱”, “폴짝폴짝” 뮤지컬 ‘마틸다’를 감상하는 내내 떠오른 단어들이었다.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한 160분의 긴 공연시간 내내 객석의 눈과 귀도 마찬가지였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일어나 함께 팔딱 폴짝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들썩여질 정도였다. 그만큼 생기가 넘치는 무대였다. 노래와 춤, 객석까지 날아오르는 대형 그네, 화려한 레이저쇼, 동화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특수효과. 무엇보다도 주인공 마틸다를 비롯한 아역 배우들이 어른 배우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밝은 에너지를 한껏 발산한 까닭이다.

기대와는 달리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독서충’이란 이유로 마틸다는 집에서 구박덩이다. 학교에서는 위압적인 교장이 횡포를 일삼으며 괴롭힌다. 그럼에도 마틸다는 “이건 옳지 않아!” 당당하게 지적하면서 헤쳐나간다. 사랑받지 못하는 환경에 굴하지 않고 행복을 찾는 한 소녀의 성장이야기여서 어린이들이 꼭 관람하면 좋겠다 싶었다. 어른들도 꼭 볼만한 뮤지컬이다. 딸이란 이유처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그 어떠어떠한 이유로 부당하게 상처받은 기억을 가졌다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즐거이 힐링 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바로 마틸다가 그러했듯이.

영화로도 선보인 적 있는 ‘마틸다’는 이미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아동문학가 로알드 달이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도대체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다고, 책을 읽는다고 구박하는 아빠에다, 춤에 빠져 이를 방조하는 엄마로 인해 마틸다에게 집은 집이 아니다. 그런 엄마 아빠에게도 주눅 들지 않고 바른 소리만 하는 총명한 마틸다는 집에서 점점 소외되고 만다. 대신 도서관에서는 갈 때마다 그곳 선생님에게 탈출마술사와 공중곡예사 이야기를 해주며 환대받는다.

뮤지컬이라는 큰 이야기 속의 작은 이야기로 마틸다가 도서관에서 이어가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나중에 이 이야기는 교장의 폭거 속에서도 따뜻한 희망이 되어준 담임선생님의 개인사로 밝혀진다. 그렇듯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특별한 아이’ 마틸다와 선생님은 결국 함께 살게 되고, 둘이 수레바퀴처럼 재주를 한번 넘은 후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서로 아픔이 있기에 나이를 넘어 삶의 동행자가 되는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상큼발랄’한 흥이 넘치는 무대에서 유독 잔잔하고도 깊은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가 하면 아이들이 그네를 타고 객석 위로 날아오르는 장면에선 절로 환성이 터졌다. 저학년부터 고학년 아이들로 그네타기가 연이어지면서 점점 그네의 진동 스케일이 높고 넓어짐에 따라 객석의 “와~!” 볼륨도 크레셴도가 되어갔다. 해머던지기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학교에서도 해머를 휘두르듯 폭군인 교장, 사기꾼 기질로 “책보다 테레비!”를 외치며 딸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마저 찢어버리는 아빠, 그가 총애하는 오빠는 늘 텔레비전 소파에 콕 박혀 늘어져 있고, 춤 경연대회와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엄마 등등 “이건 옳지 않아!”를 날려 보내는 듯한 그네의 퍼포먼스에 속이 다 시원해졌다. 

교장은 물론이고 아빠 엄마도 마치 만화영화에서 튀어나온 인물들인 양 캐릭터들이 독특했다. 그래선지 아이들을 아예 “구더기들”이라 부르는 교장조차 악한으로만이 아닌 마틸다를 더욱 당차게 만드는 에너지원으로 보였다. “책보다 테레비!”를 입에 달고 다니는 아빠도 마틸다가 책 읽느라 익힌 러시아어 덕분에 위기를 모면함에 따라 되레 ‘독서의 힘’을 일깨워준 셈이 됐다. 독서의 계절에 어린 관객들도 많건만 대놓고 텔레비전만 강조해서 내심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교훈이 은근하게 보다 효과적으로 이뤄졌다고 할까. 흥이 넘치는 재미와 밝은 에너지, 힐링의 메시지에다 독서의 힘까지 영양가를 고루 풍성하게 선사한 무대였다. 
사실 ‘마틸다’는 뉴욕 브로드웨이나 런던 웨스트엔드에 가야 볼 수 있는 화제작이다. 뮤지컬 전문가들이 ‘한국에 꼭 들여오고 싶은 해외 뮤지컬 1위’로 꼽기도 했던 이 작품을 신시컴퍼니가 내년 2월10일까지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린다. 아시아 및 비영어권 국가로서는 한국에서 처음 공연되는 것이라고. 이를 위해 150대 1의 경쟁을 거쳐 황예영, 안소명, 이지나, 설가은 등 4명의 어린이 배우들이 주인공 마틸다로 선발돼 춤과 연기, 발음은 물론 러시아어와 아크로바틱까지 수개월 연습했다고 한다. 이날 9월의 마지막 목요일 공연에선 황예영 어린이가 마틸다 역을 똑 부러지게 해내 환호와 박수갈채를 듬뿍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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