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10.19 15:15

도전은 인간을 시험한다.
고난은 가치와 욕구, 열망. 역량과 능력을 시험한다.
역경은 새롭고 어려운 상황을 다루는 혁신적 방법을 요구한다. 시련 또한 인간이 가진 최고의 지혜를 끌어낸다.

제임스 쿠제스의 ‘리더십 챌린지’에 실린 내용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으나 자리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리가 있으나 그것도 우리들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사람의 삶에도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역할이 있다. 그러나 그 역할이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온다.

학창시절부터 항상 그리고 싶었던 그림이었으나, 주변 환경이 그 꿈을 무산시켜버렸다. 결혼을 결심할 때 남편이 내게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는 환경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던 제의가 첫째 이유였다. 그러나 시댁의 여러 가지 여건과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나는 하고팠던 그림을 시작할 수 없었다. 나보다는 주위의 분위기가 중요했고 아이들이 내 인생보다 우선 되어버렸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건이 되었을 때쯤 이번에는 나의 운명이 그것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아이들과 가족이 내 희망보다 우선순위였다. 어느 순간 그 시간이 후회로 다가오면서 이제는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러스트였다. 초기 일러스트부터 용감하게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다. 나보다 먼저 시작한 지인들이 있으나 그분들의 그림 실력과는 비교하지 말고 내 그림만 바라보며 내 그림의 분위기를 만들어가자는 생각이었다.

조금씩 그림의 구도가 잡혀가고 내 나름의 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색감의 느낌도 희미하게나마 알기 시작했다. 어느 날 신문광고에 나온 일러스트를 보면서 색감과 느낌이 아름답다는 생각에 모방을 해보았다. 눈에 쏙 들어오게 잘 그려진 일러스트를 보면서 잘 그려질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잘 그려져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 일러스트를 보신 어느 분께서 쪽지를 보내오셨다. 오랜 외국 생활에서 왜 한국인들이 영어를 어려워할까에 대하여 고민하시면서 영어교육에 관심을 지니고 계시는 분이셨다. 손안에 들어가는 포켓북을 구상 중인데 그 포켓북에 들어갈 그림을 요청하셨다.

일러스트 초보라고 말씀을 드렸으나 오히려 너무 전문적이지도 너무 초보도 아닌 그림이 오히려 분위기가 좋다는 그분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좋은 영어교재를 만드신다는 의도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한 달 동안 백 장의 일러스트를 그리기로 약속하였다.

재능기부라는 생각으로 미술 전공 며느리의 조언을 받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초보인 내 실력을 인정하신 그분께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승낙한 후에서야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지닌 채 시작한 도전이다. 내 능력의 한계도 궁금했다.

한 줄 영어문장으로 그림을 구상하고 내 상상력을 동원하여 구도를 잡아가는 작업에 처음에는 ‘미쳤지~~ 초보 주제에…….’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진땀 나는 상황도 연출됐다. 50여 장쯤 그리게 되자 조금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완성단계에서는 처음 그렸던 그림이 만족하지 않은 상황으로 변했다.

몇 가지 교육을 받는 일정 중 여성가족부에서 주는 상담사 교육과정은 종일 교육을 받는 날도 있어 내게 하루가 온전히 주어지는 요일은 일주일에 이틀뿐이었다. 추석 명절까지 끼어있는 9월에 한 달은 그림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한 주에 이틀로 계산하면 열흘도 되지 않았다. 약속에 대한 강박감이 작용했는지 새벽 3~4시면 잠이 깨는 시간이 지속됐다. 약속 시간을 앞둔 날 저녁 10시에 내 성명을 기재하고 백 장의 일러스트를 완성했다. 스스로 ‘잘했어~~~“라고 토닥이고 싶은 날이었다.

마지막 마무리 시간에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만화 속 빗금이 그어진 것 같은 모습이기도 했으나 무작정 어렵기만 했던 시간은 아니었다. 색을 칠해가면서 칼라감이 좋아지고 수채화의 기본기를 저절로 익히게 되었다.

리더십 챌린지의 주인공이 모두 저명인사는 아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모습이 아니고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 마쳤을 때 얻은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자신에게 향하는 자부심이 다음 시간을 준비할 수 있는 용기가 되어 격려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한 나는 꿈에 손을 내미는 도전을 지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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