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11.05 17:19

‘올 때는 순서가 있으나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태어남은 순서의 매김이 확실하지만, 세상을 떠나는 것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예측을 조금이라도 더 가늠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운동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과 마찬가지로 필자 또한 2‧30대를 거치고 40대까지도 건강이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항상 뒷자리를 차지했다. 50이 넘고서야 비로소 건강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불효자는 부모가 비로소 돌아가신 후 못다 한 효도에 대해 후회한다. 마찬가지로 건강도 많은 이들이 건강을 잃고 난 후에 후회하게 된다. 건강이든 효도든 그것을 잃기 전에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필자도 그 준비를 위한 첫 단계로써 지난달 28일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춘천마라톤 대회에 도전했다. 달리는 것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판단했다. 42.195km는 엄두도 못 내고 나 자신의 건강 수준을 고려해 10km 코스에 참가했다. 달리기 좀 한다고 하는 사람이 보면 10km 거리는 가소롭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릎이 약한 필자 수준에선 결코 쉽게 도달할 수 없는 목표였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생각으로 우선 10km 완주를 하고 조금씩 목표를 높여가면서 궁극적으로는 풀코스 즉 42.195km까지 도전해보는 것이 목표다.

10km 완주 메달
이번에 치러진 춘천 마라톤 대회는 풀코스 도전자 약 1만6천 명, 10km 도전자 9천 명, 합치면 약 2만5천 명이 참가한 대한민국 최대의 마라톤 대회이다. 풀코스는 9시에 10km 코스는 10시에 출발했다. 10km 출발선에서 출발 총소리와 함께 9천 명이 달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으로 인해 초반에는 뛰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밀려서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1km쯤 지나자 조금씩 사람들 간격이 벌어지며 인해 정상적으로 달릴 수 있었다. 달리기가 다른 운동에 비해 좋은 점은 남녀노소 구별 없이 누구나 쉽게 접하고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1km를 지나고 2km 구간에 접어들자 비로소 주위 사람이 눈에 들어오는 여유가 생겼다. 아빠 손을 잡고 뛰는 초등학교 4학년 꼬마, 시각장애인과 손을 묶고 달리는 자원봉사자, 머리가 백발인 80대 할아버지 등 다양한 사람이 목표 지점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5km 반환점을 돌자 역시나 고질적인 왼쪽 무릎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지 좀 더 참고 더 뛰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뒤에서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을 보고 이대로 포기하면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지는 것 같기에 중도 포기보다는 걸어서라도 골인 지점까지 가기로 했다. 사실 뒤에서 8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열심히 뛰는 것을 보고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1km 출발선에서 굵어진 빗줄기가 5km 반환점을 돌 때는 거의 그치는 듯하다가 7km 지점에 접어들자 또다시 굵어지기 시작했다. 이날은 정말 마라톤 하기에 최악의 날씨였다. 이를 악물고 걷다가 잠시 뛰다가를 반복하면서 어느덧 9km 지점에 다다랐다. 앞에 골인 라인이 흐릿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몸이 반응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땐 무릎의 통증을 신기하게도 느낄 수 없었다.

마침내 골인 지점을 통과했다. 기록은 1시간 20분. 달리기 좀 한다는 사람이 들으면 얼마나 가소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기록을 숨길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당당히 얘기하고 싶다. 한쪽 다리로 이 정도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자신을 위로해 주고 싶다.

주위에서 얘기로만 듣고 신문에서만 봐 왔던 춘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 앞으로 달리기를 계속하면서 건강도 챙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번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어떤 사건과 직면하게 된다. 그때 그 기회를 확실히 잡는다면 자신의 인생을 멋지고, 보람되게 가꿀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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