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 탑이라면, 수행이 높았던 스님의 사리를 두는 곳이 승탑이다. 구성은 석탑과 비슷해서, 기단(基壇) 위에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두고 그 위에 머리장식을 얹게 된다.
이 승탑은 연곡사 내의 북쪽 산 중턱에 네모나게 둔 바닥돌 위로 세워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연곡사는 고려 초까지 스님들이 선(禪)을 닦는 절로 이름이 높았는데, 이 때문인지 이곳에는 북 승탑 외에도 구례 연곡사 동 승탑(국보 제53호),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보물 제154호) 등이 더 모셔져 있다. 북 승탑은 그 중에서 가장 형태가 아름다운 동 승탑을 본떠 건립한 것으로 보이는데, 크기와 형태는 거의 같고, 단지 세부적인 꾸밈에서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기단은 세 층으로 아래받침돌, 가운데받침돌, 윗받침돌을 올렸다. 아래받침돌은 2단으로, 아래에는 구름무늬를, 위에는 두 겹으로 된 16잎의 연꽃무늬를 각각 새겨두었다. 윗받침돌 역시 두 단으로 나누어 연꽃과 돌난간을 아래위로 꾸몄다. 특히 윗단에는 둥근 테를 두르고, 그 속에 불교의 낙원에 산다는 극락조인 가릉빈가(伽陵頻迦)를 돋을새김해 두었다. 탑신의 몸돌은 각 면에 향로와 불법을 수호하는 방위신인 4천왕상(四天王像) 등을 꾸며놓았다. 지붕돌에는 서까래와 기와의 골을 새겼는데, 동 승탑과 마찬가지로 기와 끝에 막새기와의 모양을 새겨두었다. 머리장식으로는 날개를 활짝 편 네 마리의 봉황과 연꽃무늬를 새긴 돌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승탑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어떤 스님을 기리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어 ‘북 승탑’이라고만 부르고 있다. 동 승탑이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반면에 북 승탑은 그 후인 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8각형 승탑을 대표할 만한 훌륭한 작품이다. [문화재청]
북 승탑(北 僧塔)
국보 제54호 연곡사 북 승탑은 국보 제53호 연곡사 동 승탑에서 150m쯤 올라가면 있다. 한 절집 안에 국보급 승탑이 2개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큰스님이 주석하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쉽게도 어느 분인지 알 수 없어 그저 북쪽에 있는 승탑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일부에서는 현각선사 승탑으로 보기도 한다.
상대석은 53호 국보와 매우 흡사하다. 하대석과 중대석은 조금씩 변형시킨데 비하여 상대석은 그대로 가져와서 얹은 듯하다. 즉, 상대석에는 큼직한 홑꽃잎 세 겹을 앙련형식으로 새기고, 꽃잎 가운데에는 꽃무늬 장식을 하나씩 도장 찍듯이 새겼다. 상대석 위 몸돌 받침에는 난간처럼 둥근 마디가 있는 기둥을 세우고, 칸마다 반인반조(半人半鳥)의 극락조, 다양한 모습의 가릉빈가(迦陵頻伽)를 양각으로 새겼다. 몸돌 받침 위에 얹힌 8각 몸돌역시 2곳에는 문비를, 2곳에는 향완(香垸)을 새겼으며 나머지 네 곳에는 사천왕상을 새긴 것이 53호 국보와 거의 같다.
몸돌 위 지붕돌(옥개석)과 상륜부는 매우 복잡하면서도 화려하다. 특히, 지붕돌 윗면에는 섬세한 기왓골을 있는 그대로 새겼으며, 아랫면에는 서까래 등을 목조건물 느낌처럼 세밀하게 새겼다. 지붕돌 위에 이어진 상륜부도 53호 국보와 거의 비슷하게 앙화와 복발, 보륜 등이 보이며, 날개를 활짝 편 가릉빈가를 새겼는데 아쉽게도 머리 부분이 모두 깨졌다.
연곡사에 들려 동 승탑과 북 승탑 국보 2점을 살펴본 후 조금 내려오면 서 승탑이라 부르는 승탑이 또 하나 있다. 앞선 국보 2점은 누구의 승탑인지 몰라 동, 북 방향으로 부르지만 서 승탑은 몸돌에 소요대사지탑(逍遙大師之塔)이라고 씌어 있어 소요대사 승탑임을 알 수 있으니, 보물 제154호 연곡사 소요대사 승탑이다.
소요대사 승탑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조선시대 승탑으로 보이는 종형 승탑을 몇 개 지나고 그 아래 동백나무 숲속에 비석이 하나 서있다. 1907년 음력 9월 11일, 이곳 연곡사에서 부하들과 장렬히 산화한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이다. 이로써 정유재란에 이어 왜군과 일본군에 의하여 절이 피해를 입고 불타버린 까닭이다.
순절비 아래 평지로 내려서면 승탑이 하나 서 있는데, 비신은 간데없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보물 제152호 현각선사 탑비로 이를 보고 국보 제54호가 현각선사의 승탑이라고 조심스레 추정한다.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거북은 한발을 들어 올리려는 모습이다. 거북등에 있는 비좌에는 커다란 안상을 새기고 꽃무늬까지 특이한 형상에 전체적으로 철분 탓인지 색상도 붉은빛이다. 비신 없이 비좌에 바로 얹힌 이수 중앙에는 玄覺王師碑銘(현각왕사비명)이라고 전서체로 쓰여있다. 국보 제54호 북 승탑이 현각왕사 승탑일 것이라고 추측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