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11.30 14:12

한낮, 사진 공부를 위해 회원들과 찾은 창경궁에서 한 쌍의 청춘을 만났다. 서로 국적이 다른 게 분명해 보이는데 한복이 어쩌면 그리도 잘 어울리는지. 단아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었다. 하염없이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그들에게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무례한 제안에도 선뜻 그러라고 허락을 했다. 고맙기도 하지. 아름다운 한복 자태만큼이나 마음도 아름다운 젊은 한 쌍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인사동이나 경복궁 덕수궁엘 가면 한복을 입은 젊은이를 많이 볼 수 있다. 오늘 여기 창경궁에도 어김없이 화사한 한복 차림의 청춘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 유행인 유럽식 드레스인지 한복인지 정체 모를 한복 사이에서 그들이 입은 한복의 단아함은 으뜸이었다. 우리나라 총각의 도포야 제 나라 옷이니 잘 어울렸다 치자. 그 옆은 분명 백인 처자인데 연분홍에 옥색 배색이 들어간 한복 자태가 어쩜 그리 우아한지 ‘미스터 션샤인’ 속 애신 아기씨가 환생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다른 게 있다면 우리나라 청년의 손엔 처자 것일 듯싶은 앙증맞은 주머니 가방이 매달려 달랑거린다. 그 모습마저 마냥 귀엽기만 하다. 백인 처자의 어깨 근처에 달린 나비 두어 마리의 날갯짓에 그녀가 더욱 고와 보인다. 눈처럼 하얗고 꼿꼿한 동정이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사진 찍으라고 다정한 포즈를 취해주고는 활짝 웃으며 돌아선다. 씩씩한 걸음걸이로 돌아서 가는 뒤태가 가을 햇살에 단아하고 화사하게 주변을 밝혀주고 있다. 연분홍빛 치마 아래로 살짝살짝 드러나는 운동화까지도 내 눈에 마냥 기특하고 예쁘다.

아마도 학교 들어가기 전으로 기억된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중앙시장 포목 골목으로 데려갔다. 골목길을 돌고 돌아 허름한 대문을 밀고 들어가니 한복 만드는 집이었다. 어두컴컴한 방에서는 매캐한 연기 냄새가 났다. 콩기름이 눅진하게 배어 있던 낡은 방안엔 화로에 인두와 앉은뱅이 재봉틀이 있었다. 뼘으로 내 몸을 재는 아주머니 곁에서 엄마는 넉넉하게 만들라고 한 번 입고 말 옷은 안 되니 몇 년 입을 수 있게 재라고 당부하셨다.

설날 아침, 그 색동저고리와 다홍치마는 나를 날아가게 했다. 엄동설한에 내복에 그 치마저고리만 입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추운데도 추운 줄을 모르고 돌아다닌 탓에 다음날부터 며칠을 독감으로 고생깨나 했다. 그럼에도 며칠 동안 난 그 한복을 입고 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행복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한복 추억은 끝이다. 크게 만들라고 엄마가 신신당부하셨건만 다음 해에는 입지 못했다. 눈치도 없이(?) 내 키가 훌쩍 커버리는 바람에.

창경궁에서 나와 인사동에 들렸다. ‘퓨전 한복’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한복이 거리에 넘실거리고 있다. 하나 같이 눈처럼 하얗고 꼿꼿한 동정은 온데간데없다. 넓은 열두 폭 치마도 물론 없다. 국적 불명이라 부르지만 그 덕에 인사동 길이 화사하다. 살짝살짝 고무신 코가 보이는 대신 운동화가, 구두가 자기 얼굴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다. 뭐가 재밌는지 깔깔거리며 앞서가는 두 소녀의 치마 길이는 깡총하게 무릎선이다. 하얀 속바지가 다 드러났다.

길이가 짧아 경박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조선시대도 그렇게 입었다. 조선 시대 풍속화를 보면 빨래하는 아낙도, 물 긷는 처녀도, 주막집 주모도 치마를 무릎까지 접어 올려 속바지가 다 드러나게 입었다. 일 안 해도 먹고사는 양반집 아기씨나 안방마님이면 모를까 다들 그렇게 입고 일을 하며 살았다. 어떤 이는 어우동 차림으로 다닌다고 그게 한복의 품격을 떨어트린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뭐 어떤가. 그 시절 양산이 없으니 햇빛 가리개로 모자를 쓰고 다닌 것이라고 이해하면 간단하다.

지금 우리가 한복이라 부르는 것은 조선 후기 옷이다. 조선시대 여성 한복 저고리는 후기로 갈수록 기장이 짧아지고 소매가 좁아졌다. 치마는 풍성한 볼륨이 유행이었다. 대여섯 폭이면 충분히 만들던 치마가 열두 폭으로 늘어났다. 짧고 딱 붙는 저고리에 볼륨 있는 치마를 입는 ‘상박하후(上薄下厚)’ 스타일이 됐다. 이 스타일 옷들이 조선 후기에 대유행을 이루었다. 이것이 오늘날 전통 한복으로 자리 잡았다. 그때도 이런 한복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상하고 기괴해 말세의 징조라 했단다.

요즘도 ‘퓨전 한복’으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하지만 전통 한복과 ‘퓨전 한복’의 기준이 무엇인가? 누구도 결론 낼 수 없는 문제다. 요즘 한복에 대해 나도 거부감은 들지만, 세월 따라 모든 것이 변한다. 알면서도 거부감이 든다는 것은 내가 ‘꼰대’라는 거다. 우리가 젊었을 때 미니스커트 단속을 하고 장발 단속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웃기는 얘기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옷도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불편하다고 나도 입지 않는 한복을 입어 주는 젊은이들에게 부끄럽다. 전통을 그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고운 시선으로 보면 이 또한 곱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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