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12.21 11:07

매 연말이면 기업체에선 연례행사로 신문지상이나 방송 매체를 통해 인사이동을 발표한다. 이는 그 조직에 몸담은 이들에겐 초미의 관심사다. 왜냐하면 그 결과에 따라 그 조직에서 내 미래의 향방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이동 결과가 발표되는 날 필자가 몸담은 회사에선 거의 두 시간 동안 인터넷을 접속할 수 없었다. 수많은 직원이 그 결과를 보기 위해 한꺼번에 접속을 시도하여 망이 과부하로 인해 접속이 불가한 상황이 발생했다.
   
인사이동의 꽃은 역시 임원 승진이다. 굳이 군대와 비교하자면 별을 다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임원을 달기 위해서는 보통 그 조직에서 20년 이상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을 때 ‘임원’이라는 결실을 거둘 수 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달 때 비로소 소위 말하는 ‘출세했다’라는 얘기도 들을 수 있다. 임원 타이틀은 개인적으로 명예와 부를 거머쥘 수 있는 매력적인 것이다. 그러나 실상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반대급부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 기업체 현장에서 25년을 경험한 필자의 생각이다.

올해 들어 정부 주도하에 기업체 사무실은 주 40시간 근무를 권장하고, 실제로 그렇게 시행한다. 이에 많이 직장인이 5시 퇴근 후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불과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8시 출근, 퇴근은 빨라야 밤 8시가 일반 직장인의 삶의 패턴이었다. 더구나 회사에서 임원을 목표로 하는 이에겐 퇴근시간은 기약이 없었던 게 현실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임원’이라는 타이틀과 개인의 사생활과 가정생활을 바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사생활과 가정의 대소사 어느 것보다 회사 일이 순위에서 가장 앞을 차지했다. 이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쟁취했을 때 그 사람은 명예와 부는 쟁취했겠지만, 행복까지 같이 했을지 의문이다. 이런 것이 한편으론 임원을 달지 못한 사람의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임원을 달지 못해 소위 말하는 시기나 질투심의 발로라고 비칠 수도 있다.

인생을 반백 년 넘게 살아오면서 이제 조금씩 세상의 이치를 느낀다. 필자도 한때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입사해서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기 위해 나름으로 20년 이상 세월을 열심히 달려왔다. 그러나 어느 시기에 예기치 않은 일로 임원이라는 타이틀은 더는 성취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그 당시의 상실감과 절망감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때부터 새로운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가족이었다.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던 가족이 나의 눈에 들어오면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임원을 다는 것보다 인생에서 멋진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밤을 새워도 마무리되지 않는 일보다 학원 수업으로 피곤해하는 아들딸을 차로 픽업하는 것이 훨씬 더 즐거움을 주었고, 또한 시간적 여유로 새로운 취미 생활도 하게 되면서 회사의 출세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승진 그리고 출세.’ 조직에 몸담고 야망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도전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러나 인생 구만리 길에서 승진과 출세를 위해 모든 전력을 쏟아붓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든다. 100세 시대에서 승진과 출세는 60세까지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60세 이후의 삶을 위해서도 에너지를 비축해둘 필요가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필자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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