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조선

입력 : 2019.02.15 11:39

비밀번호는 인간 욕망이 빚은 필연

‘열려라. 참깨!’는 동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 나오는 주문이다. 보물을 숨긴 동굴의 문을 여는 암호. 아랍어로 참깨가 가진 다른 뜻에는 문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라도 ‘열려라. 문!’이라고 외친다손 문은 안 열릴 것이다. 왜냐하면, 동굴은 오직 도둑의 우두머리 음성만 인식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

요즘, 동화 세계 밖으로 나오자마자 또 부딪히는 것들은 바로 그야말로 동화 같은 용어들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블록체인, 가상화폐, 사물인터넷, 자율자동차, 3차원 프린터, 드론, 아바타 로봇 등등. 이들은 자고 나면 하루가 다르게 느껴지는 첨단 문명의 진행형들이다. 이들은 제각각 실체를 드러내며 삼삼오오 묶이고 연결될 것이다. 그것도 매우 가깝게, 그리고 한꺼번에 빠르게.

시간이 흐를수록, 한 살 더 먹을수록, 우리 어린이들은 할아버지나 할머니 아니 선생님들보다도 이 첨단 문명 이기들이 들려주는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이야기에 매우 친숙해질 것이다.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어 가 있는 동안 그들은 매우 행복한 세상을 맛본다. 상상의 속도보다 더 빠른 문명의 힘은 우리네 몸과 마음을 서로 나누다가 합치다가 또 나누어 서로 보게 할 것이다. 가끔은 제각각 마음껏 떠다니게 하다가 손잡는 즐거움도 맛보게 할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러나, 이 즐거운 상상의 세계는 비밀번호라는 현실의 벽에 곳곳 막히곤 한다. 너나없이 끊임없이 묻고 대답해야 하는 것이 바로 비밀번호인 것. 내 이름을 대신하는 일명 아이디도 묻는다. 새 첨단기술이 더 발달할수록 더 많이 묻고 묻는 과정이 복잡해져 갈 수밖에. 애써 쌓은 내 것을 지키려는 자와 손쉽게 남의 것을 가져가려는 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방패와 창의 견줌은 지구가 없어져야 끝날 것. 바로 인간 욕망이 빚은 필연으로 너나없이 뜨거운 감자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라고 한다. 대부분 시간 따라 우리는 무엇을 잊는다는 의미. 이는 단순할수록 행복해진다는 인간 본능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조만간에 없어질 인증키, 은행과 쇼핑몰과 같은 응용소프트웨어 등등 인터넷의 도구들을 이용할 때마다 생기는 이용자 번호/비밀번호를 모두 기억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그러니, 비밀번호를 잊어 재발급을 해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수밖에.


나의 비밀번호 지키기는 생존법

보통 비밀번호를 한 번만 정해놓고 사용하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잊어버리고, 노출되고, 비정기적으로 바꾸라는 권유 등으로 인해 비밀번호를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러한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아예 누가 관리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일 것이다. 그렇다고 어디 수첩에 적어두는 일도 한계가 있다. 수첩 분실은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몇 개의 문자와 숫자를 중심으로 이를 변형해 사용 경우가 일반적이다. 주민등록번호, 생년월일, 주소, 개인 이름, 특정 지명, 전화번호, 우편번호 등 개인 신상 정보가 바로 그것. 그러나, 이는 비밀번호를 캐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주요 목표가 된다. 그러면, 비밀번호들을 어떻게 관리하는 습관을 어떻게 갖는 것이 최선일까?

다음은 필자가 비밀번호를 관리하는 방안이다. 가족이 함께 사용할 경우, 서로 잘 기억하는 글자나 숫자를 조합해 공동으로 사용한다. 조합된 비밀번호에 사용한 날짜나 요일 등을 자신만의 표기 방법으로 삽입하면 좋다. 바꿀 때는 기존 비밀번호에 바꾸는 날짜나 요일을 다른 칸에 삽입해 사용하도록 한다. 물론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족과 합의한 것 대신, 나만이 아는 장소 이름, 동물, 꽃, 나무 등을 2개 이상 조합해 생성 일자/요일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비밀번호는 계속 변경되므로 나만의 비밀번호 수첩에 기록해 두는 것이 좋다. 내가 정한 규칙에 따라 고정적인 문자나 숫자는 특수문자로 적어두어야 한다. 예, ‘2019’를 ‘****’로, ‘천안’을 ‘******’로, 적는 것도 중요한 방법이다. 이 수첩이 분실될 경우를 대비한 것. 자신이 특별한 사정이 생길 것을 염려해 가까운 사람에게 이러한 규칙을 알려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과 비례해 가상화폐 보관용 지갑을 관리해야 할 비밀번호가 수없이 늘고 있다. 특히, 이 가상화폐 비밀번호는 아예 외울 수 없을 정도로 길다. QR코드와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비밀번호 보관의 최선은 보통 Hard Wallet을 이용하도록 권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를 분실할 경우를 대비해 종이에 출력해 별도 보관하는 일을 병행해야 한다.

한편, 긴 비밀번호나 QR코드를 2~4개로 나누어 각각 다른 파일로 보관하는 방안도 좋다. 사용할 때는 나눈 파일의 내용을 순서대로 위치에 맞게 조합하면 된다. 물론 나눈 파일들은 자신만이 아는 표식으로 파일 이름을 만들어 다른 저장 장치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비상용으로 종이에 출력해 보관하면 더욱 안심이다. 참고로 최초의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중 20%에 가까운 400만 개 정도가 그 주인의 비밀번호 분실로 사장되었다고 한다. 1 비트코인이 500만 원이라고 할 때, 무려 20조 원 이상이 그 주인들의 손을 떠난 것.


비밀번호는 내려놓을수록 행복하다

예컨대, 첨단장비와 블록체인기술로 인해 비밀번호를 외우고 관리해야 하는 사람들의 수고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너는 누구냐?’에 ‘나다!’라며 비밀번호를 누르거나 핸드폰으로 실시간 번호로 확인시키기도 한다. 손의 지문, 눈의 홍채 확인과 함께 ‘열려라. 참깨!’라고 말로 속삭이는 일도 생길 것. 양자역학의 결이 연출하는 생각을 인식하게 될 ‘인간 염기 배열 신분 확인시스템’이 등장하거나, 음주측정 하듯 그 사람 숨결을 인식해 누가 누군지 확인하는 일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리라.

물론, 이러한 비밀번호 관리를 맡기면 참 속 편할 듯. 보통 부부나 가족일 경우다. 그 외는 아마도 비밀번호 위탁 관리를 해주는 전문가도 생길 것이다. 이는 내 전 재산이나 가장 중요한 것을 통째 맡기는 꼴이다. 그만큼 보수도 클 것이다. 그보다 그들을 믿고 맡길 수 있겠느냐는 것. 그러나, 나를 대신하는 ‘내 아바타’가 나타나기 전까지 ‘비밀번호 로봇’에게 맡기게 되리라. 일각에선, 어떠한 방법이든, 이러한 ‘비밀번호 확인관리시스템’을 누군가 개발해 왔고 또 계속 개발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기어이 떠나지 않는 비밀번호 같은 미련이 계속 남는다. 보물을 숨긴 동굴 문에 대고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을 외치기보다, 어쩌면 문명의 벽 아니 블록체인의 블록으로 둘러싸인 동굴 아닌 동굴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 더 행복할지 모르리라는 것. 어떠한 주문이나 비밀번호를 몰라도 편히 살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더 어떠한 것에 매달리기보다, 어떠한 문이 있든 편하게 들락날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이 멈추지 않는다.

문득, 상상이 멈출 즈음, 시간 따라 밥 한 그릇 더 먹을수록, ‘기계보다 사람’이란 단어를 더 사용하고, 그래서 ‘문명보다 자연’이란 단어를 더 사랑하고 싶은 것이 나만의 욕심일까? 아니면, 사회를 멀리 바라보고 싶은 이방인 목소리인가? 아니, 이도 저도 아닌 도피인가, 거만인가, 자랑인가?

하, 그것참 묘하게 어렵다, 이러한 질문도 또 대답도 어렵기만 하다. 분명 기나긴 블록체인 비밀번호 관리보다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도 쉽게 접근할 수는 있다. 그렇다, 쉬울 거다. 삼삼오오 ‘열려라. 참깨!’를 외치던 어린아이 마음만 간직하고 있으면, 아주 쉬우리라. 그래, 외칠 때만은 행복하리라. 스스로 비밀번호를 내려놓을 수 있을 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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