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고향에 계신 모친이 갑자기 기억을 잃어버리셨다. 치매 증상이 의심되어 부랴부랴 서울 근교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보았다. 현재 80대이신 모친은 70세에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소 질병을 앓으면서 앞을 보지 못하게 되셨다. 모친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경우가 아니라 70살 되는 해까지 밝은 눈으로 세상을 봐 왔는데 망막색소변성증을 앓으며 어느 날 한순간에 세상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되면 당사자는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실감을 겪는다. 그 상실감이 지속되면 외부와 접촉이 단절되고 그 단절은 우울증이라는 새로운 질병을 일으키게 된다. 우울증은 치매의 전조 증상이다.
암도 일반인에겐 심각한 질병으로 인식되지만, 수술만 하면 상황에 따라 완치를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치매는 아직 그 치료 약을 개발하지 못하고 다만 그 증상을 완화하는 수준까지만 와 있다. 때론 치매가 암보다 더 무서운 병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암이라는 질병은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받으면 완치라는 결과를 만들 수 있지만, 치매는 현실적으로 완치가 불가하고 환자는 돌보는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기에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 정신적, 육체적, 금전적으로 많은 고통을 준다. 긴병에 효자, 효부 없다는 말은 바로 이 치매를 앓는 환자를 돌보는 가족을 일컫는 말이다.
보통 치매를 앓는 노인은 비록 정신은 온전하지 못한 경우라 할지라도 걸어 다닐 수는 있다. 그러나 치매 환자가 설상가상으로 눈까지 보이지 않으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비록 치매가 있더라도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보실 수 있도록 시력을 회복할 수 있는 치료법을 알아봤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작년 서울의 모 종합병원에서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던 50대 환자를 수술하여 정상 시력의 40%까지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접하고서 그 병원으로 수술 여부를 문의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답변을 들었다. 이 수술이 초기 단계이다 보니 비용 측면에서 최소 1억5천만 원이라는 거금이 필요하고, 또 치매를 앓고 있는 80대 노인에겐 수술 후 좋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이에 따른 수술 효과는 그렇다 치더라도 비용이 이렇게 많이 필요한 부분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의료서비스 관점에서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들 하는데 망막색소변성증의 치료비가 그토록 많이 필요한 것은 상식 밖으로 이해된다. 현실적으로 과연 이 정도 비용을 들여서라도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싶다. 대한민국 의료보험 제도를 살펴보면 적어도 일반인 관점에서 과도하게 책정된 비용은 대개 성형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혹시나 이 질병 치료가 성형으로 분류되어 이런 비용이 책정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도 가져 본다. 작년 통계를 보면 국내에서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는 분이 대략 2만 명 정도라고 한다. 이들에게 이 수술은 그야말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느낌일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이 수술이 의료보험 적용을 받아 앞이 안 보이는 이들에게 밝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지원이 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