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4.17 13:08

어린 시절 만화로 알던 이집트의 미라는 두려움이었고, 40대에 밤을 새워 읽은 고고학자 크리스티앙 쟈크의 소설 람세스의 주인공이 살던 어느 시간대는 내게 밤하늘의 별빛처럼 수많은 상상력을 동원시켜주던 공간이었다. 국토의 95%가 사막이라는 상상의 나라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지난 1월 여행을 다녀온 이집트가 계속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 ‘아멘호테프 3세’, ‘아케나텐’, ‘하토루’, ‘아문 라’, 지하세계 ’두아트’ 등 낯선 언어가 머릿속에서 뱅뱅 맴돌았다.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과 역사는 현재 이집트와는 연결되지 않을 정도로 긴 시간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 이집트 관련 서적 몇 권을 펼쳐놓고 다녀온 곳들을 찾아 사진과 대조하며 머릿속에서 맴돌던 단어들을 연대기와 연결하여 정리하였다. 연대기가 정리되자 뱅뱅 돌던 단어들이 뚜렷한 모습으로 입력되기 시작하였다.

스핑크스와 연결되는 이야기는 오이디푸스 왕의 전설로, 아이카스테 왕비는카스테라로 외우면 되겠네. 투탕카멘의 왕비 안케세나멘은 아케나텐의 딸로…. 고대 어느 나라 왕실에서나 혈통 보존을 위한 근친결혼의 풍습에서 여성 개인의 존재가치는 사막의 모래알 같았던 어느 시대를 거쳐 간다.

암기로 시작된 이집트 인명 단어들이 왕의 연대표를 보면서 흥미로워졌고, 왕비들의 이름을 암기하면서 이집트의 명사가 나름의 흐름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네페르라’, ‘네페르티티’, ‘네페르타리’, 우리나라의 ‘자자’나 ‘숙자’ 이름처럼 여자들에게 사용되는 단어라는 생각을 하자 생소하던 언어들이 친숙해지기 시작하였다. 소설 람세스는 이름만으로도 낭만적인 상상력을 지니고 내 안에 잠재하고 있었다. 매우 특별한 느낌을 지니고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추억 속 어떤 기억 같다.
그렇게 떠났던 여행에서 마주하는 이집트는 여행의 들뜬 기분으로 마냥 즐길 수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마주하는 모든 모습이 안타까웠고, 심지어 인솔 가이드나 현지 가이드까지 이상스러운 안타까움을 전달하고 있었다. 황량한 사막의 모래바람을 마주해야 하는 그들의 시간이 그런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기원전 4,500여 년을 거슬러가는 경이로운 고대 문명의 흔적을 바라보면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것은 사막의 모래언덕이었다. 고대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모래언덕 위에서 멈추고 있는 것 같은 나라였다. 그들이 삶의 철학으로 삼고 있는 ‘인 샬라’(신의 뜻대로)의 의미를 모래사막에서 깨달아가기 시작하였다.

그 땅에서 마주치는 시간의 의미가 유럽의 어느 나라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추구하는 특별한 정신세계는 ‘바’(혼), ‘카’(성령), ‘아크트’(육체)로 그들은 육체가 사라져도 ‘카’가 남아 현세를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한다. 고대 이집트는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이 되는 나라로 심지어는 풍뎅이까지 신이 되는 정신세계가 참으로 특이하였다.
그들이 추구하는 특별한 영혼의 세계를 알아야 그들이 남긴 고대 유물과 역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면 혼은 떠나서 내세로 가고 육체는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만, 고대 이집트인은 혼과 육체 사이에 또 하나의 ‘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물질이 지닌 고유 개념이 있는 것처럼 사람도 각각 물질 같은 개념이 있어, 혼은 죽어서 내세로 가지만 ‘카’라고 하는 개인이 지닌 물질 같은 개념은 지상에 남는다. 그 개념의 ‘카’가 머물 곳이 필요하여 그들은 미라를 제작하고 미라가 머물러있을 피라미드를 만들었다고 한다.

내세의 영원을 기원하며 만들어지는 미라에 필수적으로 보존해야 하는 심장은 지하세계인 ‘두아트’에서 그 무게를 저울질당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치로 추구하는 삶의 무게감을 그들은 내세로 향하는 희망의 가치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 희망을 지키기 위한 장소가 사막의 피라미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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