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맨 처음 만나는 것이 사막이었다. 그네들의 신앙은 오래전부터 신화로 이어지는 독특한 신들의 세계로부터 시작된다. 이전부터 있던 선사시대를 거쳐, 기원전 2,700년~기원전 2,200년까지의 고대왕조 시기에 이미 그들은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축조하기 시작하였다. 현재로부터 4,500년의 시간대를 넘어서 거대한 석조건축물을 조성했던 나라의 수도, 카이로의 모습은 맨 처음 호기심으로 시작된다.
카이로 외곽지역이었는데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는 먼지가 가득 내려앉은 것 같은 빨래들이 회색빛 거리를 내려다보며 춤을 추듯 걸려 있었다. 흙벽돌로 지은 일반 가옥 지붕 위에는 마무리 덜 된 철근 골조들이 피뢰침처럼 뾰족하게 황폐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폭탄 맞은 지 일주일쯤 된 것 같은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저 건물에 사람들이 거주하나요? 여기 카이로가 맞지요?”가 맨 처음 현지 가이드에게 한 질문이다. “이곳이 개발도상국이어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바라본 거리 모습은 우리나라의 197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것 같았다.
그 나라는 건물이 완성되지 않아 지붕이 없는 건물에는 사람이 거주해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귀가하여 책을 보면서 강수량이 많지 않은 나라라 지붕이 없어도 생활하는데 그다지 불편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 고고학자 요시무라 사꾸자는 몇 해 전 이집트에 연이틀 계속하여 비가 내린다는 뉴스를 접하고 “이집트는 비가 내리는 것도 뉴스가 되는구나.” 하며 웃었다 한다. 하지만 연간 강수량이 4mm 정도로 대부분 진흙 벽돌로 집을 짓는 나일강 상류 지역에 이틀 정도 비가 내리자 그 흙벽돌이 다 젖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본 후에는 그도 더는 웃을 수 없었다.
이집트의 오래된 신전들은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석조건축물로 몇천 년의 세월 동안 그 모습을 지니고 있으나, 궁전이나 일반 가옥은 고대부터 흙벽돌로 지어져 그 모습이 대부분 사라지고 빈터에 남겨진 돌의 흔적들로 그곳이 유적지임을 알려준다. 이런 유적지 근처 붉은 산 중턱에는 왕족들이 토굴 속에서 생활하며 지금도 유적을 발굴하고 있다고 한다.
황량한 사막에서 만나는 석양의 시간 또한 이들의 모습 같은 진한 색이었다. 카이로에서 서너 시간 사막을 달려 후르가다 바닷가 리조트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난 오후 지프차로 사막을 달렸다. 사막의 모래바람과 쓰레기처럼 보이는 무수한 비닐 조각이 석양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흙먼지 속에 무작정 흔들리는 지프차를 타고 한 시간쯤 달리자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사막에 거대한 붉은 색 산이 나타났다.
단순한 산이라 생각했던 그곳은 모래가 이루어낸 산이었다. 일 년에 몇 번 사막에는 모래폭풍이 불어오는데, 그때마다 바람에 실려 온 모래가 쌓여 산이 된다. 낮은 야산처럼 보이는 곳을 오르는데, 일반적인 모래라고 생각했던 언덕의 길 사이사이의 돌조각들이 길을 만들어주었다.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을 올랐을 때 사막의 지평선 너머로 붉은 석양이 어둠의 휘장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평야처럼 펼쳐진 모래 바다로 보이는 넓은 사막의 땅. 그 땅이 오래전부터 꿈꾸던 파라오 람세스의 땅이었다. 조금씩 해가 기울어지며 바다처럼 펼쳐진 사막 위로 긴 그림자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우리 땅에서 만나던 어느 일몰보다 진한 색으로 다가오던 짙은 석양빛이 모래 바다의 색을 변화시켰다. 인간이 살지 않는 태초의 땅처럼 그 빛은 신비로움으로 다가왔다.
석양은 람세스의 뒤를 따라다니던 수사자의 짙은 다갈색 털처럼 깊은 음영을 지니고 어둠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온몸을 감싸오는 석양의 황홀은 먼 길을 떠나와 낯선 땅에서 만나는 이국의 정서였다. 동행의 얼굴을 가린 히잡 모양의 진분홍 머플러가 그녀를 이집트 여인처럼 변화시킨다. 어둠과 교차하는 시간에 붉은빛 황혼을 따라온 어둠이 만들어가는 착시현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