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 상류인 멤피스에서 기차를 타고 12시간을 달려 기자에 도착하였다. 오후 8시에 기차를 타고 한밤을 달려 도착한 시간이 오전 8시다. 시간을 계산해보니 기차는 우리나라 무궁화호 정도의 속도로 운행하는 것 같았다.
예정 시간에 기자(Giza)역에 도착하자 현지 가이드가 우리에게 “행운을 지니고 다니시는 분들”이라는 표현을 한다. 이집트 현지 가이드는 일정을 안내할 때 “현지 사정상 시간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라는 단서를 꼭 붙인다. 그만큼 이집트의 모든 대중교통은 무질서하고 불규칙적이다.
기차가 느린 속도로 달리고 있어 일찍 잠이 깬 새벽에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지루한 시간을 메웠다. 간혹 입구에 불을 켜 놓은 집들이 있는데 집 규모와 관계없이 어디나 붉은 진흙벽돌집이었다.
이집트 1월 기온은 우리나라 3월 기온과 비슷하다. 피라미드가 사막 넓은 땅 한가운데 거대한 모습으로 햇빛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상상으로만 생각하던 피라미드의 실제 모습이 눈앞에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했던 상상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잠시 숨을 멈추었다. 이미 도착해있던 관광객들의 모습이 그 거대한 석조건축물 앞에서 개미보다 더 작은 점으로 움직였다.
기원전 2,700여 년 전 이집트 초기왕조가 시작된다. 로마가 부족국가로 오막살이 영역을 유지하던 시기이다. 그 시기 로마인에게 이집트 유물은 현대의 우리가 그리스의 유적을 바라보는 것 같은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수많은 경이와 위대하다는 말로는 아무리 해도 모두를 형용할 수 없는 기막힌 업적”이라고 하였다.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했던 상형문자와 함께 이집트의 문명에 대한 느낌은 언어의 한계로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다.
실제 쿠푸왕의 피라미드 내부를 관람할 기회가 주어졌다. 두 사람이 간신히 몸을 돌려야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은 체감으론 거의 60도쯤 급격한 경사의 느낌이었는데, 내부통로의 경사도가 52도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 커다란 석조건축물의 내부는 외부와 같은 돌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고 통로만 간신히 공간으로 뚫려있었다. 세 개의 피라미드 중 가장 크기가 큰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밑변이 240m, 높이가 147m로 우리나라 아파트 10층 이상의 높이다. 일본에서 현대 건축공법으로 계산한 설계로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같은 건축물을 만들어 내려면 최신 기술을 사용하여 벼락치기로 공사해도 완성까지는 약 5년의 시간과 1천억 엔이 넘는 비용이 든다고 한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현존하는 석조물 중 세계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다. 이집트의 석조 구조물들은 고왕조 초기에 건축되었다. 고왕조 초기왕조인 1, 2왕조를 지나 제 3왕조가 되면 피라미드 시대의 막이 오른다. 피라미드는 이집트 최초의 피라미드인 제세르의 계단 피라미드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다.
제 3왕조의 계단식 피라미드 건축 이후 제 4왕조의 초대 스네프루왕, 2대 쿠푸왕, 3대 제데프라, 4대 카프라, 5대 멘카우라로 왕위가 계승되는데, 이 시기 왕권이 절대적으로 강화되자 본격적인 피라미드의 시대가 열린다. 기자의 3대 피라미드는 가장 큰 2대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4대 카프라 5대 멘카우라의 피라미드이다. 제3대 제대프라의 피라미드는 아부 루아쉬에 미완성으로 남았다. 아부 루아쉬는 초대왕 스네프루의 피라미드가 있는 지역이다.
기자의 3대 피라미드 위치로 본 학자들의 가설을 따라가면 쿠푸왕 시대에 3개의 피라미드가 설계되어 건축 중이었다. 쿠푸왕의 시대에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완성되었고, 쿠푸 왕 사후 제데프라에게 인계된 피라미드 공사가 카프라에게 왕위를 빼앗기면서 아부 루아쉬의 피라미드는 미완성으로 남는다. 카프라가 왕으로 등극하면서 기자의 두 번째 피라미드는 자신의 피라미드로 차지하였으며, 나머지 하나의 피라미드는 5대 왕인 멘카우라가 자신의 것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일본의 이집트 역사학자 요시무라 사쿠자는 추정하고 있다. 역사는 단지 추정일 뿐으로 진실의 확인은 없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사막에서 발견되는 백여 개 이상의 피라미드는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풀지 못하는 숙제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요시무라 사쿠자의 가설은 고대 이집트 사회에서는 왕으로 즉위하면 수십 년간 피라미드를 공사하는 것이 그들의 중요 임무였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왕은 그네들의 세상에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신의 권위를 지니고, 사후에도 역시 신으로 그들의 삶에 깊숙하게 침투하고 있었다. 영혼을 의식하며 사후세계의 꿈을 지니고 사는 나라의 역사 이야기 속 피라미드는 신비로움을 지닌 채 사막을 지키고 있었다.
어떤 힘으로 이런 거대한 건축의 축조가 가능하였을까…. 인간의 의지와 인간의 능력이 이루어낸 최대의 불가사의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