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5.13 18:47

처음엔 많이 망설였다. 자서전은 적어도 누구 보다 뛰어나 학문적인 업적을 이루었거나 혹은 정치적으로 국가에 크게 기여했던 분 정도 되어야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이 나라 경제 발전의 토대를 이루었던 박정희 대통령 혹은 국민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던 이주일 등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아 이분, 이 정도는 되어야 자서전 쓸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꼭 이런 분들만 자서전을 쓰라는 법이 있나 반문도 해 본다. 이 땅에서 50년 이상 산 이들에게 그들이 살아온 삶의 뒤안길에 관해 물어 보면 아마 대부분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는 나보다 부모님 그리고 자식들을 위해 온몸을 바쳐 일해 왔노라고.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2, 30대의 부모들이 공통으로 가진 삶의 가치관일 것이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2, 30대 젊은이들의 가치관과 앞선 세대와의 삶의 가치관은 너무나도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삶의 목표는 국가를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삶만이 머릿속에 깊게 심어있다. 즉, 내가 잘살아야 우리가 있고, 우리가 있어야 국가도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물론 이러한 사고방식이 더 현실에 맞을지도 모른다. 또 젊은이 대부분이 이렇게 사고하고 있다면 이에 맞게끔 국가 시스템도 움직여 주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개인주의 삶이 민주주의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점도 있다. 즉, 경제적으로 혹은 학문적으로 나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부러움도 없고 그렇다고 나보다 못한 사람에 대한 멸시도 없는 그야말로 현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고다.

자서전도 이런 관점에서 용기를 내어 모 일간지가 주관하여 운영하는 자서전 코칭 스쿨에 도전했다. 최종 마감 결과 총 열 명의 수강생이 신청했다. 신청자 대부분의 면면을 보니 역시 훌륭하신 분이 많이 지원했다. 연령대는 40대 후반부터 80대 초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였다. 대부분 80대 어르신들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소 의외였다.

이 자서전 코칭 과정은 총 10회에 걸쳐 진행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현시점 10회 중 3회 교육까지 참가했다. 첫 모임 때는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들로 인해 다소 어색한 분위기로 진행되었으나 코칭 스쿨 강사님의 노련한 진행으로 금세 서로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다. 자서전 코칭 스쿨을 오래 진행하면서 쌓아 온 강사의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자서전 코칭 스쿨 과정에 참여하면서 이 교육은 단순히 자서전을 적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내가 살아왔던 나의 인생 여정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이 큰 의미였다. 그동안 가정의 경제적인 안정만을 위해 오직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오느라 내가 걸어왔던 과거의 인생 역정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그동안 가끔 옛 추억을 더듬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현실 속에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았다.

자서전 교육 과정을 통해 나의 출생부터 초, 중, 고, 대학 그리고 직장 생활에 대해 차분히 되돌아보게 되었다. 처음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자서전 교육을 통해 하나, 둘 끄집어낼 수 있었던 점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40여 년 전의 기억들이 예상치 못하게 다시 생각나는 것에 대해 나 자신도 놀라기도 했다.

총 10회의 교육 과정 중 이제 3회가 진행되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하나둘 딸려 오는 느낌에 더 열심히 교육에 임했다. 앞으로 7회의 과정이 남아 있다. 올 8월이면 이 교육을 종료하게 되고 그때쯤이면 정말 나의 인생 여정을 총정리한 나의 자서전이 완성되리라 본다.

자서전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나의 인생을 정리하는 외형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기억을 하나둘 새롭게 되돌아보는 것이 이번 교육에서 내가 얻은 하나의 큰 기쁨이다. 비록 나의 현재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보통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걸어온 인생 여정을 한번 되돌아보는 것이 한 개인의 삶에 있어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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