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찾아요? ’ 지난달 종로6가에 나가 종묘상 주변을 어슬렁거리니 주인장이 빤히 쳐다보며 말합니다. ‘도라지 씨도 있나요? 이 집 저 집 기웃거려도 도라지 씨가 안 보였거든요.’ ‘있다마다요. 그런데 조금 더 이따가 심어야 해요?’ 하며 도라지 씨가 들어있는 봉투를 내밉니다. 어설픈 도시 농부티가 팍팍 풍겼던 게지요.
나의 농사는 매년 4월에 종로5가에서 시작합니다. 큰길 한쪽에 쪼르르 종묘상이 모여 있습니다. 여기는 농기구와 씨앗을 구하는 사람들로 5월까지가 대목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니 당연히 대목이지요. 열무나, 얼갈이는 물론이고 고추나 토마토도 있습니다. 물론 가지도 있고 대파도 있고…. 올해는 한 번도 심지 않았던 고수도 심을 예정입니다. 벌레퇴치용이지요. 향이 강해서 벌레 쫒는 데는 일등 공신이라 하니 한 번 심어 볼 요량입니다.
도라지도 심을 예정입니다. 억울해서 심습니다. 물론 꽃도 피고 하니 꽃도 볼 겸 심는데 억울해서 심는다는 이유는 명절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명절만 되면 도라지나 고사리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갑니다. 올 설에도 한 움큼에 8000원을 주었습니다. 소고깃값도 8000원이면 한 움큼은 되겠지요.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이야 국산이라지만 키우고 것을 보지 못한 이상 중국산인지 국산이지 어찌 알겠습니까?
화분 하나에 심었습니다. 그 도라지도 드디어 싹이 나기 시작합니다. 내가 그 얘기를 친구들에게 했더니 어이없다 하하하 웃었지요. 원래 좀 엉뚱한 데가 있는 나라 ‘너답다.’ 하면서요. 내가 키운 것이니 확실한 국산이지요. 거기다 하늘색이나 흰색으로 꽃까지 보니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게 아니겠어요.
이제 5월이니 본격적으로 상자 텃밭 농사가 시작입니다. 상추도 이미 한 차례 따 먹었고 고추나 토마토도 쪽파도 잘 자라고, 대파도 꽃을 피웁니다. 달래도 잘 자랍니다. 달래는 마트에서 사다 줄기는 먹고 뿌리만 잘라놓았다 심은 것입니다. 쑥쑥 자라더니 꽃이 피려는지 꽃봉오리가 올라왔습니다. 달래 꽃은 본 기억이 없는데 참으로 궁금합니다. 아니 아니 어쩌면 ‘아, 저 꽃! 저 꽃이 달래 꽃이었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나이만 먹었지 아는 게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작년엔 한 번 상자 텃밭을 갈아엎고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고추도 시들시들, 가지도 시들시들, 도대체 영문을 모르고 속을 썩였습니다. ‘모종을 잘못 사 왔나?’, ‘종자를 잘못 사 왔나?’ 온갖 생각에 며칠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내 농사 스승 501호 아저씨가 물 주려고 올라오셨습니다. 그런 나를 보더니 묻습니다.
‘혹시 모종 심을 때 비료 주셨어요.’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 필요 없다고 준 비료를 냉큼 받아와 이쁘게 잘 크라고 뿌렸거든요. 모종을 심고 씨앗을 심을 때 그랬습니다. 이때 비료 주는 것은 독약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또 하나 배웠습니다. 아직도 배울 게 많은 나이입니다. 배우며 또 한 해 농사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