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서원(淸溪書院)
남계서원 바로 옆에는 김일손을 모신 청계서원이다. 김일손은 정여창, 김굉필 등과 함께 김종직에게 배웠으며 사관으로 스승 김일손의 조의제문(吊義帝文)을 사초에 실어 촉발된 무오사화 때 능지처참 형을 받았다.
원래 이곳은 김일손 선생이 1495년 청계정사(淸溪精舍)를 세우고 수학하던 곳이었으나 무오사화 이후 폐사되었으나 1906년 후학들이 재건을 논의하고 모금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17년 남계서원으로부터 대지를 기증받아 각 건물들과 유적비를 건립하여 1921년에 준공하고 청계서원이라 하니 선생 사후 416년 만이다.
정여창 고택(古宅)과 묘소
남계서원을 찾아본다면 남강 건너 개평마을의 정여창 고택(古宅)과 서원에서 멀지 않은 승안산 정여창 묘소를 둘러 볼만하다.
정여창 사후에 후손들이 건립한 고택은 입구 솟을대문에 충신, 효자를 기리는 정려(旌閭)가 5개나 걸려있으며 하마비도 세워져 대단한 집안임을 알 수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높직하게 자리 잡아 권위 있어 보이는 사랑채가 나오는데 충효(忠孝) 절의(節義) 네 글자가 크게 붙어 있다.
다시 작은 문을 들어서 안채로 들어가다 보면 사랑채 옆으로 남자들 소변소가 달려 있어 흥미로우며 가묘(家廟)와 안사랑채를 돌아보고 다시 사랑채 앞으로 나오면 사랑채 사이의 작은 정원이 잘 꾸며진 것임을 알고 감탄하게 된다.
서원에서 조금 위쪽으로 가면 승안산인데 원래 승안사라는 절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 정여창 선생 묘는 부인 완산 이 씨 묘와 함께 상하묘로 조성되었으며 조선 전기 형태의 네모진 방형 무덤과 묘역에 세워진 문석인과 신도비 등 석물이 흥미롭다.
묘역 입구 재실 근처에는 승안사가 있었을 때로 보이는 삼층석탑(보물 제294호)과 석조여래좌상(경남유형문화재 제33호)이 있어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하는데 석탑 기단과 1층 몸돌에 새겨진 조각상들은 흔치 않은 작품이다.
이곳 승안사 절터에 어떻게 정여창 묘소가 들어서게 된 것인지 그 선후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