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서원은 대부분의 서원이 그렇듯이 강학 공간을 앞에 두고, 제향 공간을 뒤에 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나 경사지형에 세운 탓에 전체적으로 좁고 가파르다. 다행히 서원 앞 너른 공간이 있어 숨통이 트이며 길 건너 흐르는 강물이 여유로움을 보태주고 있다.
정문 수월루를 들어서면 눈앞에 경사진 언덕 위 담장이 가로막는다. 계단을 올라 중간에 작은 문이 환주문(喚主門)이다. 주인을 부르는 문이라는 뜻인데, 강학 공간으로 들어서는 문이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환주문을 들어서면 강학 공간이다. 네모난 마당을 중심으로 가운데로 돌을 깔아 길을 내었으며 정면으로 높직한 단위에 강당 중정당(中正堂)이 무게감 있게 마주한다. 좌우로는 유생들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대칭으로 자리 잡았다. 도동서원의 중심 영역이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도동서원은 전체가 사적 제488호로 지정되었으며 그중 강당 중정당과 사당, 그리고 토담을 묶어서 보물 제350호로 지정하였다. 특히 환주문을 포함한 담장이 포함된 것은 특이한 일로 그 토속적 아름다움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강당 중정당(中正堂)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주심포식 맞배지붕 건물로 가운데 세 칸은 마루방이며 좌우 한 칸씩 온돌방인데 방 앞으로 반 칸의 마루를 내어 대청마루와 연결하였다. 축대를 올리고 다시 기단을 높여 강당을 세우니 시야를 꽉 채우며 당당하게 내려다보는 듯하다.
강당에는 모두 3개의 현판이 걸려있는데 도동서원 글씨가 2개이다. 바깥쪽에는 퇴계의 글씨를 집자하여 새긴 것이며 안쪽 위에는 사액 현판인데 모정(慕亭) 배대유(裵大維)의 글씨로 전한다고 하니 선조 임금이 친필로 써서 내렸다는 기록과는 맞지 않아 궁금하다. 그 아래로 강당 이름 중정당은 숙종조 문신 이관징의 필체이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강당의 기단은 지대석과 면석, 그리고 갑석으로 되어있는데 윗부분 갑석 바로 아래에는 모두 4개의 용머리가 새겨져 내밀고 있는데 그동안 모두 도난당하고 왼쪽에서 2번째만이 진품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다람쥐 모양의 동물이 상승, 하강하는 모습을 새기거나 상서로운 꽃 모양을 새겨 눈길을 끄는데 전국에서 김굉필 선생을 기려 보내온 작은 돌들을 조각조각 이어 붙였다고 한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도동서원은 건축적 평가 외에도 곳곳에 숨은 그림 같은 조각이나 석물들이 숨겨져 있고 그에 대한 진지한 해석들이 재미있다. 강당 석축에 새겨진 용머리와 동물, 꽃 모양도 그렇고 중정당 축대와 돌길이 만나는 지점에 돌거북을 새긴 것도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환주문에 오르는 계단이나 사당 내삼문에 오르는 계단의 좌우 소맷돌 등에도 봉황을 새기거나 글자나 도형으로 보이는 조각들이 있어 사뭇 궁금하다.
그러나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의 서원이라면 그 세워진 연원에 대한 스토리텔링 정도면 모를까 배향된 인물의 역사적 평가나 학문적 성취에 대한 업적과 자부심 등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텐데 방문객들에게 숨겨진 것들에 대한 해석과 신비함을 지나치게 주입하려는 것 같아 조금은 조심스럽다. 특히 도동서원이 더욱 그러하다.
강당 뒤편 사당 또한 급경사를 계단으로 올라 내삼문을 지나야 하는데 그저 되는대로 쌓은 듯한 계단마저도 소맷돌의 조각과 계단 위쪽 중앙에 용머리 등이 눈길을 끈다. 늘 잠겨있어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김굉필 선생 외에 한강 정구 선생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사당 안에는 창건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벽화가 있다고 하는데 직접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도동서원은 공자의 도(道)가 동으로 갔다는 뜻인데 그만큼 성리학의 본산으로 자부심이 강한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사당과 강당, 토담을 묶어서 보물로 등재할 만큼 건축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곳이며 근래에 사당 앞에 세워진 몇 개의 비석이 다소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애초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점이 높이 평가되는 서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