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8.13 15:55

네 번째 서원,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

세계유산 2관왕
조선의 서원 9곳 중 네 번째 답사는 경주의 옥산서원이다. 사적 154호로 지정된 옥산서원은 이언적(李彦迪)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1572년(선조 5) 경주부윤 이제민(李齊閔)이 지방 유림의 뜻에 따라 창건하였으며 1574년 사액 서원이 되었다. 1871년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며 세계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중 하나이다.

사실 옥산서원은 이번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뿐 아니라 이미 2010년에 ‘한국의 역사마을’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는바, ‘한국의 역사마을’은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그리고 양동마을과 동강서원, 옥산서원과 독락당이 포함되어 있으니 명실공히 세계유산 2관왕이다.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회재 이언적(1491~1553년)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며 동방오현(東方五賢 :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으로 광해군 때 문묘에 배향되었고 종묘에는 명종의 공신으로 모셔졌다.

경북 경주 사람으로 원래 이름은 이적(李迪)이었는데, 중종의 명령으로 '언(彦)'자를 덧붙여 '언적(彦迪)'이 되었으며,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이며, 성리학자로 이황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1531년(중종 26) 김안로 일파의 탄핵을 받았으나 왕세자의 사부라서 유배되지 않고, 파직만 당하였다. 이후 한양을 떠나 고향인 경주에 낙향하여 1532년 자옥산에 서실(書室)인 독락당(獨樂堂)을 짓고 성리학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집중하였다.

1547년 윤원형 일당이 조작한 양재역 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종직과 이황 사이를 잇는 중요한 인물로 추대되었는데 이황은 이언적의 학통을 직접 계승하지는 않았지만, 이언적은 김종직의 적통으로 학문을 계승하였으므로 자신의 학문적 연원을 이언적에 연결시켰다.

기본에 충실하게 지어진 옥산 서원
옥산서원은 서원의 이론에 맞게 강학 공간을 앞에 두고 제향 공간을 뒤에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으로 단순 명료하면서도 질서 정연한 기본에 충실하게 지어졌다.

서원 앞을 흐르는 자계천(紫溪川 : 아름다운 자줏빛 시내)은 지금도 숲이 깊고 흐르는 물이 넘치며 너럭바위를 휘감는데 무심한 듯 개울 뒤로 자리 잡은 옥산서원은 50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옥산서원 하마비(下馬碑). 옥산서원 앞 자계천 건너 수풀 속에 있다. 하마비에서 말을 내려 뒤쪽 자계천에 놓였을 다리(또는 징검다리)를 건너 서원으로 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서원 아래쪽 큰길로 거슬러 올라오니 자칫 이 하마비를 못 보고 말 수도 있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아름다운 자줏빛 시내라는 자계천(紫溪川)은 옥산서원 앞에서 작지만 낙차를 보이며 소(沼)를 이루며 흘러가는데 세심대(洗心臺)라고 가까운 바위에 각자(各字)로 새겨놓았다. 주변에는 등심대, 탁영대, 관어대, 영귀대 등의 반석이 있고 옥산서원을 둘러싼 화개산, 자옥산, 무학산, 도덕산과 더불어 사산오대(四山五臺)라 일컫는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옥산서원 정문인 외삼문 역락문(亦樂門). 삼문 중 중앙과 동쪽 문에만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노수신이 역락(亦樂)이라 지었으며 한석봉 친필이다. 역락(亦樂)은 『論語』「學而」편에 나오는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而自遠方來不亦樂乎)”라는 글에서 취한 것으로 학문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출입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현판을 보면 왼쪽 여백에 두 줄 문장이 쓰여 있다. 이를 액찬(額贊)이라고 하는데 聞風則回 望道而來 不亦樂哉 邦之英才, ‘문풍칙회 망도이래 불역락재 방지영재‘라고 씌어있으며 (옥산서원의) 풍문을 듣고 돌아오며, 도(道)를 바라서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나라의 英才들이여!.“라고 기쁨을 표현한 글이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외삼문 역락문을 들어서면 누각 무변루(無邊樓)가 있다. 대부분의 서원들이 외삼문에 2층 누각을 얹어 정문을 삼았지만 옥산서원은 외삼문을 지나 누각을 따로 지었는데 돌아앉은 뒷모습이라 답답한 느낌이다. 반대편 안쪽에 걸린 무변루(無邊樓) 편액은 한석봉 글씨이며 본래 이름 납청루(納淸樓)를 노수신이 주돈이의 風月無邊(풍월무변)에서 따와 바꾸었다고 한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다행히 역락문과 무변루, 즉 외삼문과 누각 사이 좁은 공간에 인공수로를 파서 자계천 물줄기를 끌어들이니 시원한 느낌을 준다. 작은 돌다리를 건너게 되어 있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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