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8.27 17:48

90년대 정치권에서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사자성어처럼 느껴지는 이 말이 2019년도까지도 자연스럽게 흘러왔다. 그러나 실은 사자성어가 아니다. 정치권에서 많은 이들이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모습을 자주 보여 왔기 때문에 이를 빗대어 지어낸 말이다. 워낙 매스컴에서 많이 회자하다 보니 일반 대중들에겐 자연스럽게 마치 사자성어처럼 되어버렸다. 이 의미의 진정한 사자성어는 아시타비(我是他非)가 맞다. 굳이 한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는 의미이다.

2019년 8월 어느 날 거의 모든 TV 채널에서 어떤 인물에 대해 집중적으로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방송사 기자들이 십 수가지 사례를 얘기하면서 ‘내로남불’ 의 전형적인 인물이라며 줄기차게 많은 정보를 쏟아낸다. 각 방송사가 마치 100m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는 것 처 럼 서로 먼저 기삿거리를 내보내기 위해 필사의 노력한다.

방송사에서 내보내는 기사이기에 사실에 기반을 둔 내용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과연 기사화되는 모든 내용이 진실일까도 생각해보게 된다. 거의 며칠 만에 어떻게 저렇게 많은 정보를 알아냈을까? 그들의 정보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물론 각 방송사마다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내공으로 그들이 갖고 있던 모든 정보 채널을 동원하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짐작은 간다. 사실에 근거하여 어떤 정보를 누구보다 빨리, 구체적으로 얻어 내는 활동이 바로 그들의 직업 즉 먹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백 년 넘게 살아오면서 아직도 이해 못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보통의 가정에서 태어나 보통의 대학을 졸업한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과연 저 상황이 되었을 때 저렇게까지 꿋꿋이 버틸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해본다. 저렇게 당당한 모습이 소위 말하는 대한민국 상위 1%의 자존심인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잣집 아들도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일사천리로 엘리트 코스만을 거쳐 왔기에 나는 너희 일반인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있는 것인지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지만, 여전히 필자의 짧은 생각으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세상은 넓고 인재도 많다.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은 너무나 위험한 발상이다. 이빨이 없으면 잇몸을 갖고도 음식을 먹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물론 어떤 조직이라도 그 조직 지도자의 역량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선례를 보더라도 큰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필자가 몸담은 회사도 가장 상위의 리더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결국은 누가 하더라도 큰 변화는 끌어내지 못했다. 큰 변화는 위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 위로 올라가야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이 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티끌이라도 이 티끌이 하나, 둘 모여 조그마한 언덕이 되고 이 언덕이 다시 모여 마침내 태산이라는 큰 산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60년대처럼 한 명의 위대한 지도자가 나와 돌격 앞으로 하면서 일사불란하게 진두지휘하여 세상을 바꾸는 그런 시대는 이미 과거로 사라진 지 오래다.

인터넷의 발달로 모든 정보가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세상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너무나 빠르게, 정확하게 퍼지고 있다. 그로 인해 대다수의 국민들도 어떤 사안에 대해 나름의 현명한 판단을 하게 되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타인의 관점. 즉,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봤으면 한다.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타인은 그르다’는 관점에서 ‘나도 옳고 타인도 옳다’라는 관점으로 어떤 문제에 접근하면 모두에게 이로운 결정과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밑거름이 되리라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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