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9.10 16:45

왕비의 계곡에서 바쁘게 왕들의 계곡으로 이동하였다. 고대 이집트의 수도였던 룩소르(고대 도시 테베) 서안은 신왕국 시대의 수도 테베에 살던 왕족과 귀족들이 분묘와 함께 장례 사원을 만들었다. 고 왕국 시대 카의 안식처였던 피라미드가 분묘형태로 장례의식이 변화되었다. 룩소르 동쪽은 풍요가 넘치는 산 자들의 세계이다. 서쪽은 죽은 자들의 세계인 네크로폴리스가 형성되었다.

이른 새벽에 방문하였던 왕비의 계곡이 지닌 여성적 분위기에서 왕들의 계곡은 시간대부터 힘의 상징이었던 파라오들의 세계로 바뀌었다. 사막의 나라임을 확인시키려는 듯 우리나라의 2월로는 상상할 수 없는 태양열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계곡 입구에 의식을 치르듯 지나야 하는 출구 중앙에 왕들의 분묘형태의 모형이 전시되어있었다.

처음에는 낙하산 천을 펼쳐놓았나 하는 마음으로 하얀색 모형을 바라보았다. 왕들의 계곡 지하 분묘를 세밀하게 축적하여 놓은 모형이었다. 그 작은 모형을 보면서 또다시 이집트인들이 지닌 정교한 솜씨를 알아간다.

투탕카멘 왕묘와 세티 1세, 아멘호테프 2세 등 신왕국 시대의 유명한 왕들의 무덤과 방치되어 황폐해진 묘까지 60여 개 이상의 분묘가 계곡에 조성되어있다. 투탕카멘의 분묘가 발견되면서 왕들의 계곡은 세계의 시선을 끌기 시작하였다.

분묘의 수만큼 관광객의 수도 그 지역으로 몰리고 있었다. 모래사막의 태양열과 관광객들이 일으키는 흙먼지로 이른 새벽 관광의 이유를 알아간다. 새벽 관광지 관람은 이집트가 처음이었다. 잠도 안 자고 새벽부터 관광지를 가야 하는 것이 의문이었는데, 이른 시간 왕비의 계곡 방문이 가이드의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알아간다. 오전 열 시가 지나자 뜨거운 태양이 내리기 시작하고 그 열기는 점점 우리를 지치게 하고 있었다.

입장이 금지된 몇 개의 분묘들이 있었고, 이집트 왕 중 가장 인기 있는 투탕카멘의 분묘는 줄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왕들의 분묘 몇 곳을 관람하였다. 대부분 비슷한 분묘 형태로 지하 25m 정도의 길이로 긴 지하 통로가 이어진다.

​외부에서 보는 소박한 출구와는 전혀 다른 지하세계를 마주한다. 그곳에는 산자보다 더 화려한 죽음 이후의 세상이 있다. 크리스티앙 쟈크의 소설 람세스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영혼이 함께 만나는 꿈속의 세상이 등장한다. 파라오가 지닌 신비로운 힘의 세계이다. 영혼이 지닌 신비로운 공간이 분묘에 조성되어 있었다. 그 공간에서 사는 “카”라는 영혼이 살아있는 자들의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전해오는 정신의 세계이다.

실제 파로스 등대를 방문했을 때 이집트인들이 지닌 순수한 정신세계를 경험하였다. 어느 이집트 역사학자의 저서에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집트 인”이라는 구절을 읽었다. 그 말의 의미를 파로스 등대 부근에서 작은 선물을 팔고 있는 거리의 상인에게서 공감하게 되었다. 이들이 지니고 있는 “카” 사상은 기원전 4세기 경 이집트를 방문하였던 플라톤에게도 그 영향력을 미쳐 "대화" 등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관람이 허용된 몇 개의 묘지를 둘러보면서 왕비의 계곡에서 느꼈던 감정이 다시 살아났다. 오랜 시간을 지켜온 그림과 색채, 그리고 그 긴 터널 같은 지하세계를 조성하던 이집트인들의 사상이다. 그들은 노동 이상의 신성함으로 조각하고 가장 아름다운 색을 골라 채색하였을 것이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 돌의 세계이던 고왕조 시대가 지나고 신왕조 시대가 시작된다. 신왕조 시기는 왕과 왕비, 재상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인간들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 역사가 오랜 시간 동안 지하 왕국인 분묘 속에 살아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놀라운 정신세계를 만나는 것이었다.

​이집트의 왕은 파라오로 불린다. 큰 집이라는 의미를 지닌 파라오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집을 크게 짓는 일이다. 고왕국 시기에도 파라오가 하는 일 중 가장 크게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 피라미드의 조성이었다. 신왕국 시기에도 파라오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신전과 분묘의 건축이다. 왕권에 따라 신전과 분묘의 크기도 달라진다.

한낮의 햇살이 내리는 왕가의 계곡은 이집트 왕들이 지니고 있던 강력한 힘의 세계를 전달하고 있었다. 해가 뜨기 전 새벽 여명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왕비들의 분묘는 신비로웠다. 관람객이 일으키는 모래바람 속에서 바라보는 왕들의 분묘는 힘의 상징인 파라오의 모습을 보이었다.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태양 빛 아래 웅장한 지하세계를 지니고 있는 왕들의 분묘는 오직 그 시간 그 느낌으로만 알아갈 수 있는 그들만의 신성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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