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11.20 16:21

일곱 번째 서원, 논산 돈암서원(遯巖書院)

우리나라 14번째 세계유산 ‘조선의 서원 9곳’ 중 일곱 번째는 논산의 돈암서원이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중 유일하게 충청도에 있는 서원으로 조선 중기의 대표적 유학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호유학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논산군 연산면에는 김장생의 아버지가 설립한 경회당(慶會堂)이 있어 문풍(文風)이 크게 진작되었으며, 김장생은 양성당(養性堂)을 세워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으며, 1634년(인조 12)에 양성당과 경회당을 중심으로 서원을 건립하였다.

이후 1660년(현종 1)에 '돈암(遯巖)'이라고 사액되었으며 1658년(효종 9)에 아들 김집(金集)과 1688년(숙종 14)에 송준길, 송시열을 각각 추가 배향하여 모두 4위를 모시고 있다. 1880년(고종 17)에 서원이 있던 숲말(林里)의 지대가 낮아 홍수피해가 있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로서 본관은 광산,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이며 동국 18현 중의 한 사람으로 문묘에 배향되었다.
대사헌 김계휘(金繼輝)의 아들이며 김집(金集)의 아버지이다. 송익필(宋翼弼)로부터 사서(四書)와 『근사록(近思錄)』 등을 배웠으며 20세 무렵에는 이이(李珥)에게 성리학을 배워 예학(禮學)의 태두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 뒤 성혼의 문하에도 출입하여 수학하였다.
김장생의 예학론은 양란(兩亂) 이후 혼란해진 국가 기강을 바로잡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통(統)을 바르게 하는 것’, 즉 정통(正統)에 중점을 두었고 이러한 정통주의적 예학론은 이후 집권 세력의 정치 이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율곡 이이의 학통을 이어, 아들인 김집을 비롯하여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윤선거 등 당대 최고의 학자를 배출하였다.

동국18현(東國十八賢)
동국18현(東國十八賢)은 학덕이 높은 우리나라 인물 18인을 말하는데 시대별로 신라의 설총과 최치원, 고려의 안향과 정몽주, 조선의 김굉필, 조광조, 이황, 정여창, 이언적, 이이, 성혼, 김장생,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김인후, 조헌, 김집을 말하는데 성균관 대성전에 공자를 비롯하여 4명의 수제자와 뛰어난 10명의 제자 그리고 송나라 명현(名賢) 6명 등 21위에 더하여 동국18현까지 모두 39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동국18현중 부자(父子)가 함께 모셔진 것은 김장생과 김집뿐이니 대단한 일이다.

돈암서원 입구. 진입로에서 비켜나 있던 홍살문과 하마비를 옮겨 세웠는데 홍살문이 온전치 못한 모습이다. 세계유산 등재가 확실시된다던 지난 6월 모습인데 이 모습으로 현장실사를 받았는지 의아하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대개의 서원은 삼문 형태의 정문 외삼문을 들어서서 누각을 지나거나 누각 자체를 외삼문 위에 얹어 출입하게 하였는데 돈암서원은 삼문 밖에 누각을 따로 세우고 별도로 담을 둘러쌓았었다. 누각은 최근 새로 지은 듯하며 누각을 둘러싼 담장은 없어진 채 서원 설명에 누각은 빠져있어 그 사연이 궁금하다.
서원 담 밖에 혼자 서 있는 누각 산앙루(山仰樓). 1층에 돌기둥을 세워 올린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의젓한 모습이다. 앞, 뒤로 현판을 걸었는데 앞면의 산(山) 자가 특이하다. 누각은 원생들이 모여서 쉬거나 학문을 토론하는 곳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맞는 곳이기도 하다. 안쪽 좌우로 호연지기(浩然之氣), 음풍농월(吟風弄月) 같은 선비들의 기개를 살리는 현판을 걸었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정문인 외삼문은 입덕문(入德門)이다. 삼문의 형태이나 좌우는 문을 내지 않고 가운데만 문을 낸 사실상 외문이다. 그래서인지 더 단정하고 아담해 보인다. 전에 왔을 때는 외삼문 바깥에 돈암서원(遯巖書院) 현판을 걸고 안쪽에 입덕문(入德門) 현판을 걸었더니 바뀌었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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