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강당 양성당(養性堂)이 보이고 좌우로 동재(東齋), 서재(西齋)가 있는 ㄷ자형 강학(講學) 공간이다. 강당 뒤로 사당을 두었으니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이다.
가운데 강당은 양성당(養性堂)이며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좌우로 온돌 단칸방이 하나씩이고 중앙 3칸은 툇마루를 두고 문짝을 달았지만 커다란 마루이며 뒷면에는 쪽마루가 붙어있어 문짝을 들어 올리면 커다란 강의실이 되는 것이다.
강당 앞에 선 비석은 돈암서원 원정비로 문하생들이 서원을 세운 경위와 김장생, 김집 부자의 학문과 업적을 적은 것이다. 원래 서원 자리에서 옮겨올 때 함께 왔으며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전액은 김만기, 글씨는 송준길이 썼다.
돈암서원의 강학(講學) 공간. 강당을 중심으로 좌우로 유생들 기숙사격인 동재와 서재가 마주 보고 있다. 강당 뒤로 사당 지붕이 보인다.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임을 알 수 있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정문을 지나 강당으로 가기 전 왼쪽에 시선을 끄는 건물이 보인다. 돈암서원의 강당(講堂)으로 1880년 이곳으로 옮길 때에 옛 터에 남아 있던 것을 1971년에 옮겨왔다고 한다. 옮길 때에 “숭정 6년 계유(癸酉)” 명문을 발견하여 인조 11년(1633)의 초창기 건물임을 알 수 있게 된 귀한 건물로 보물 제1569호이다.
정면 5칸·옆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 응도당(凝道堂), 돈암서원에서 가장 빼어난 건축물이다. 큼직한 대들보 위에 얹혀 건물이 의젓하며 기둥 위 익공 사이에 화반을 붙여 아름답다. 좌우로는 가첨 지붕(눈썹 처마)을 붙인 서원 강당으로는 드물게 큰 규모이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예전에 외삼문에 걸었던 돈암서원(遯巖書院) 현판이 응도당(凝道堂) 안에 걸려있다. 큰 글씨 위에 작은 글씨로 ‘賜宣日月正子庚禎崇’라고 쓰여 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으면 ‘崇禎 庚子正月日宣賜(숭정경자정월일선사), 즉 숭정(明 황제 의종 연호) 경자년(1660년) 정월에 사액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강당 양성당(養性堂) 왼쪽으로는 정회당과 장판각, 오른쪽으로는 전사청이 있다. 경판이나 인쇄용 목판 등을 보관하는 장판각(藏板閣)이나 제향에 쓰이는 제기 등을 보관하는 전사청(典祀廳)은 익숙한 건물이지만 정회당이 낯설다.
정회당(靜會堂)의 정회(靜會)는 유생들이 수행하는 방법 중 하나로 고요하게 몸소 실천하며 수행한다는 뜻인데 사계 김장생 부친이 강학하던 건물로 1954년에 대둔산 자락 고운사 터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김장생 부친이 강학하던 건물이라는 정회당(靜會堂). 정면에 큰 현판이 붙어 있고 오른쪽 측면 안쪽으로는 작은 현판이 붙어 있다. 정면의 큰 간판에는 ‘義城金禮山八歲敬書’ 즉 의성 김 씨 김예산이 8살 때 썼다고 쓰여있어 흥미롭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대부분의 서원이 그렇듯이 강학(講學) 공간을 앞에 두고 제향(祭香) 공간을 뒤에 두는데 돈암서원도 강당 뒤쪽에 사당 숭례사(崇禮祠)가 있다. 사당은 신성시하여 별도 구역을 담을 둘러쌓고 또 하나의 삼문을 두었는데 이를 내삼문(內三門)이라 한다.
돈암서원의 내삼문은 우리가 흔히 보는 삼문 형태가 아니라 가운데 문을 높이 세우고 좌우로 협문 2개를 조금 띄워서 세웠는데 전체로 보면 왼쪽과 삼문 사이, 그리고 오른쪽 세 부분에 4자 성어 3개가 꽃무늬처럼 박혀있다.
내삼문과 사당 숭례사(崇禮祠), 내삼문을 연하는 담장에는 4자성어 3개, 12자가 새겨있다. 지부해함(地負海涵), 땅이 온갖 것을 등에 지고 바다가 모든 물을 받아주듯 포용하라. 박문약례(博文約禮), 지식은 넓히고 행동은 예의에 맞게 하라. 서일화풍(瑞日和風), 좋은 날씨 상서로운 구름, 부드러운 바람과 단비 즉,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웃는 얼굴로 대하라/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돈암서원 앞에는 한옥마을도 조성되어 있고 멀잖은 곳에 사계 김장생 종가와 묘가 있어 찾는 사람이 제법 많을 듯싶다. 걷기 코스 ‘솔바람 길’도 있어 많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돈암서원을 중심으로 탐방코스를 연결하면 좋은 답사지역이 될 듯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