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이집트 여행기[8] 아부심벨 - 람세스 2세 신전과 네페르타리의 소 신전

입력 : 2019.11.27 16:37

누비아 지방의 아부심벨로 가는 길이다. 이집트의 수많은 신 가운데 하나인 호루스 신에게 바친 신전으로 추정되지만 실제로는 파라오인 람세스 2세 자신을 위해 건축된 신전으로 알려져 있다. 람세스 2세 신전과 왕비 네페르타리의 소 신전으로 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아프리카 북부의 눈 부신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한낮이 되려면 아직 이른 오전 열 시경인데도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은 바다만큼 큰 호수 위에서 싱싱한 물고기의 은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 햇살의 입자가 눈부시게 부서지는 길 위의 붉은 흙길은 쏟아져 내리는 뜨거운 태양으로 모래알 같은 주황색의 사암 조각들이 햇살 아래서 뒹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사암으로 이루어진 붉은 산을 돌아가는 모퉁이는 무엇이 나타날까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길로 길게 이어진다. 길과 넓은 호수가 수평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람세스 2세의 대신전도 룩소르의 신전들에서 마주했던 열주들과 같은 느낌일까 라는 생각을 하며 붉은 산의 모퉁이를 돌아서자 매우 먼 곳에서 서서히 확장되는 느낌의 거대한 신전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암으로 이루어진 산 아래 동굴을 파서 건축한 신전은 고대 이집트의 신비로운 모습을 가장 잘 전달하고 있다. 경사진 언덕 아래 관광객의 모습이 개미처럼 작게 느껴질 만큼 실제 모습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고대문화를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현재의 이집트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이 이루어놓은 고대 문화는 신비로운 경이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사진 제공=황수현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람세스 2세는 이집트가 자랑하는 신왕국의 대표적인 파라오이다. ​고 왕국과 중 왕국 시기 상 이집트의 테베 지역에서 일어난 제 17왕조가 힉소스를 이집트에서 쫓아내고 다시 이집트를 통일한 제 18왕조를 세워 제 2중간기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 기원전 1565년경의 일이다. 그때부터 제 19왕조, 제 20왕조로 이어지는 약 500년간의 신 왕국이 시작된다. 이 시기 중국에서는 은 왕조가 성립되려는 시기이며 유럽에서는 그리스문명 이전의 시기이다.

수 천 년에 이르는 이집트 역사 중 신 왕국 시대는 가장 역사학자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가득한 시대이다. 신 왕국 이전에 스핑크스와 돌과 신들이 중심이었던 시기에서 인간이 중심에 자리하는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신 왕국 시기에 농업이 발달하자 국력이 강해지고 따라서 왕가의 재정도 풍부해진다. 이때 왕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신의 집을 크게 짓는 일이었다.

이 시기 파라오는 신과 동일시되었으며 파라오가 즉위하면 신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신들에게 그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아부심벨을 돌아보면서 신전에 조각된 히에르클리프의 그림으로 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람세스 2세는 18왕조의 몰락과 함께 아이의 뒤를 이어 호렘헤브 장군이 즉위를 한다. 호렘헤브 역시 아이와 같은 고령으로 부하 장군의 아들이었던 파람세스를 군사령관에 임명하였다. 파람세스는 호렘헤브 사후 람세스 1세로 즉위를 하는데 역시 20개월간의 짧은 통치기간이 있었다. 람세스 1세의 뒤를 아들인 세티 1세가 즉위를 한다.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리는 투트모시스 1세를 존경하였다는 세티 1세는 매우 호전적이며 영웅적인 파라오였다. 세티 1세의 뒤를 이어 아들인 람세스 2세가 즉위한다.

​이집트 역사학자들은 고대 이집트에서 제일가는 유명인으로 람세스 2세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아버지 세티 1세가 확장한 영토를 지키는 데 공헌을 한 위대한 파라오이다. 그는 아부심벨을 비롯하여 커다란 신전을 차례로 건축하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고대 이집트 건축물이 대부분 이 시기에 건축된 것이다. 또한 열정만큼 건강하였는지 67년간 파라오로 군림하였다. 어찌나 오래 살았는지 오히려 왕자들이 먼저 죽어 12번째 왕자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제 20왕조의 왕들이 람세스 3세부터 11세까지 그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으로도 그가 얼마나 후대에 위대한 영웅으로 남겨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람세스 2세의 아부심벨은 이러한 역사를 지니고 붉은 계곡의 골짜기에서 그의 이름으로 빛나고 있었다. 대 신전 입구의 조각상에서 람세스 2세가 스스로를 얼마나 영웅시하였는지 그의 동상을 보면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였다.

대 신전 입구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의 다리 옆에 여인의 조각상이 있었다. 가이드가 누구냐고 물었지만 설마 자신의 다리 크기만큼의 여인이 왕비일까 라는 생각에 대답을 못 했는데 자신의 신전 옆에 소 신전을 건설한 네페르타리 왕비의 조각상이라는 말에 우리는 또 한참을 웃었다. 이렇게 자신감이 충만한 람세스 2세도 역시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임은 틀림없었다.

이 시기 이집트의 파라오는 신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네페르타리의 소 신전 벽면의 히에르클리프에는 람세스 2세가 자신의 아내를 위하여 여신에게 공헌하는 그림이 조각되어 있었다. 신들에게 아내를 신으로 인정 받기 위한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영웅 람세스 2세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그림을 보면서 그가 아내인 네페르타리를 얼마나 사랑하였는가를 알 수 있었다.

이 위대한 건축물 아부심벨은 람세스 2세가 기원전 13세기 천연의 사암층을 뚫어 건립하였다. 대 신전은 정면 높이 32m, 너비 38m, 안쪽길이 63m이며 입구에 높이 22m의 람세스 2세의 조각상 4개가 있다. 소 신전은 90m 떨어진 북쪽에 있다. 아스완 댐의 건설로 이 지점의 수위가 60m 높아져 수몰 위기를 만나게 되었다. 너무나 큰 비용이 드는 이전 문제에 이집트가 난색을 보이자 유네스코에서 기금을 모아 1968년 이 신전을 원형대로 65m를 끌어올려 이전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아부심벨은 전 세계가 아끼고 있는 문화유적이었다. 대 신전 제 4실에 세워진 4개의 신상을 비추는 연중 2일의 아침 햇살은 현대의 과학적 건축기술로도 풀어내지는 못하는 신비로운 영역이다. 그 특별함 역시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만큼 신비로운 존재감으로 나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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