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2.13 10:48

<1편 보기>

부처님 진신사리는 적멸보궁 법당 뒤 계단(戒壇)에 모셔져 있다. 통도사, 금산사와 더불어 이곳 용연사까지 세 곳이 계단형 진신사리탑을 모셔 유명한데 용연사 계단은 통도사에 비해 규모는 작아 아담하고 조촐하다.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해 통도사에 있던 부처님 진신사리를 금강산으로 모시고 가려다가 이곳 용연사가 안전하다고 생각되어 보관하였으며 난이 끝나자 사명대사의 제자 청진 스님이 사리 2과중 1과를 본래 봉안처인 통도사로 돌려보내고 1과는 이곳 용연사에 모시게 된 것이라고 한다.

보물 제539호 용연사 금강계단(金剛戒壇), 적멸보궁 법당 뒤 한단 높은 곳에 담을 둘러치고 네모진 구역에 돌난간을 세운 안쪽에 널찍한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종(鐘) 모양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에는 8부 중상을 양각하고 탑신 꼭대기는 큼직한 보주를 새겼는데 전체적으로 비교적 단순한 모습이다. 사방으로 사천왕상을 조각하여 세웠는데 옛 것이 아닌 듯하다. 알고 보니 하도 도난 위기가 있어 진품은 따로 모시고 있단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은 통도사에 비하여 작고 소박하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 앞쪽으로는 제단처럼 큼직한 돌을 얹어 단을 쌓았고 그 앞에는 아담한 석등이 하나 서 있다. 사리탑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2개의 비석이 서 있는데 각각 용연사 중수비와 석가여래중수비, 석가여래비로 진신사리를 이곳에 모시게 된 과정을 소상히 적었다.

적멸보궁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경배하기에 법당 안에 불상이 없다. 용연사 적멸보궁 역시 불단 위는 비어 있고 금강계단이 보이도록 뒷벽에 투명 유리창을 내어 진신사리탑을 보며 예불을 올린다.

법당 안에서 진신사리탑이 보인다. 뒷벽 중앙에 큼직하게 투명 유리창을 내었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적멸보궁을 둘러보고 다시 아래로 내려와 처음 양갈래 길에서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극락전이 있다. 계단에 알루미늄 봉으로 난간을 세워 고졸한 맛을 지워버린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렵다. 계단 위 사천왕문을 지나 이층 누각 안양루의 아래를 누하진입 방식으로 지나면 극락전 앞마당으로 올라서게 되는데 정면이 극락전이고 마당 한쪽에는 자그마한 삼층석탑이 하나 서 있다.
계단 위 천왕문을 지나면 극락전이다. 적멸보궁 법당 정면에 알루미늄 새시와 이곳 계단의 알루미늄 난간봉은 고즈넉한 산사에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현대식(?) 건축자재로 목재 등으로 대체하면 좋겠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용연사 극락전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로 단정한 맞배지붕을 가진 정면 3칸, 측면 3칸의 소박한 법당이며 안에는 목조아미타여래 삼존불을 모셨는데 보물 제1813호이다. 마당에 서 있는 삼층석탑은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8호로 지정된 고려시대 석탑이다.
극락전 앞마당에 서 있는 삼층석탑과 안에 모신 목조아미타여래 삼존불/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비교적 작고 아담한 극락전은 불단에 모신 목조아미타여래 삼존불도 볼만하지만 그 뒷벽의 후불탱화나 불단 천장에 조각한 닫집과 용머리 조각 등이 눈길을 끄는 멋스러움을 갖추었으며, 구석구석 안팎으로 빈틈없이 천장이나 벽면이나 크고 작은 벽화와 그림들이 빼곡하여 찬찬히 둘러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런데 10살의 어린 나이에 죽은 영조 임금의 큰 아들 효장세자 세자빈 조씨를 비롯한 몇몇의 시주로 만들었다는 후불탱화의 주존은 아무리 봐도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여래 부처님이다. 법당의 주존불로 아미타부처님을 모셔놓고 뒷벽의 탱화는 석가모님 부처님을 그려 걸은 이곳이 극락전인지 대웅전인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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