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4.10 10:02

룩소르(Luxor), 우리나라의 경주(慶州) 같은 고도(古都)라고 하는데 경주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면 룩소르는 '세계 최대의 야외박물관' 또는 '백 개의 문(門)이 있는 도시'라고 한다. 고대 이집트 중왕국의 수도 테베(Thebes)의 일부였는데 BC1500년경에는 인구 1천만 명을 상회하는 최전성기를 누린 것으로 전해지며 호머의 일리아드에도 그 화려한 모습이 언급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그 유명한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 그리고 높이 솟은 오벨리스크 등이 남아있는데 로마 제국 이래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많은 유물들을 가져갔음에도 불구하고 룩소르는 여전히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죽은 이들을 위한 무덤과 장제전이 모여있는 서안(西岸)을 둘러보고 이제는 살아있는 신(神)들의 동네인 룩소르 동안(東岸)으로 넘어와 카르나크 신전부터 답사해 본다.

ㅇ 카르나크 신전(Karnak Temple)
룩소르에서는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이 대표적인데 카르나크 신전은 룩소르 지방의 3신(身), 수호신 아몬과 아몬의 부인 무트 그리고 전쟁의 신 몬투를 모신 대신전으로 해마다 나일강이 범람하는 시기에 카르나크 신전의 신들을 배에 태워 옮기는 '오페트 축제'가 벌어지며 이때 룩소르 신전은 카르나크 신전의 보조역할이라고 한다. 그래서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은 약 3Km의 거리에 2000여 개의 스핑크스가 늘어선 스핑크스 로드라는 신성한 길로 연결되어있었다는데 현재 복원 중에 있다.

카르나크 신전은 중왕국 12 왕조의 창시자 아메넴헤트 1세의 아들 세누스레트 1세가 건축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룩소르를 수도로 삼았던 중왕국 파라오들은 카르나크 신전에 계속해서 새 건물이나 기념물 건축을 지원하였으며, 제2 중간기를 초래한 힉소스 인들의 침략으로 약탈, 파괴되었으나 힉소스인들을 몰아내고 등장한 신왕국 시대에는 또다시 대규모 건축이 이어진다.

특히 18 왕조는 해외 원정 전리품과 조공으로 받은 공물 등으로 재정이 넉넉하여 집중적으로 지원, 확장하였으니 앞서 둘러본 장제전의 주인공 하트셉수트 여왕과 이집트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한 것으로 알려진 아멘호테프 3세 때에 카르나크 신전의 대규모 확장공사가 있었으며 투탕카몬과 호렘헤브 때에 거의 완성되었고 19 왕조 람세스 2세에 이르러는 역대급 증축이 이루어진 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까지도 계속 증축된 것으로 알려졌으니 약 1500년에 걸쳐서 약 30대의 파라오들이 건축에 참여한 셈이다.

이후 로마 제국 지배기에 기독교화되어 교회로 쓰이기도 하였으며 이슬람 시대에는 신전의 석재들을 마구 가져다 쓰면서 결국 몰락한 카르나크 신전은 19세기까지도 폐허로 남아있다가 1895년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통하여 오늘의 모습으로 재탄생하였으니 아몬 대신전으로도 불리는 카르나크 신전은 현재 남아있는 이집트 신전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며 특히 높이 15m와 23m의 거대한 기둥들 134개가 줄지어 늘어선 대열주(大列柱)와 오벨리스크로 유명한 룩소르의 상징이기도 하다.

카르나크 신전은 동서로 500~600m, 남북으로 2Km의 규모인데 왼쪽(북쪽)에 전쟁의 신 몬투 신전(아래 사진 A)이 중앙의 아몬 신전과 붙어 있으며 아몬의 부인 무트 신전(아래 사진 B)은 동쪽(남쪽)으로 200m 남짓 떨어져 있다. 3개의 신전은 남북으로 배열된 구조이나 아몬 신전은 동서로 배치되어 배를 타고 도착하는 나일강 방향이 입구가 되며 스핑크스가 도열한 입구를 지나 1 탑문부터 6 탑문까지 동쪽으로 직선을 이루고 있다. 7 탑문부터 10 탑문까지는 남북으로 지어져 직각을 이루는데 아직도 복원공사 중인지라 개방하지 않고 있었다.

왼쪽 전쟁의 신 몬투 신전과 중앙의 수호신 아몬 신전, 오른쪽 아몬의 부인 무트 신전을 합쳐 카르나크 신전이다. 위 신전 모형에서 중앙의 건물군이 아몬 신전인데 1 탑문부터 6 탑문까지와 몬투 신전(A), 신성 연못 지역은 공개중이나 7 탑문부터 10 탑문은 아직 복원공사 중이다. 무트 신전(B)은 200m쯤 떨어져 있으며 룩소르 신전은 이곳에서 남쪽으로 3Km쯤 가야 하는데 스핑크스 로드로 연결된다
대개의 신전이 배를 타고 와서 내리는 나일강에 인접해있듯이 카르나크 신전 입구도 나일강 쪽으로 향해있다. 배에서 내려 육지로 올라오면 신전 앞에 도열한 스핑크스 사이를 지나 1 탑문이 있고 동쪽인 6 탑문까지는 직선 구조인데 그 안쪽에 거대한 규모의 기둥이 줄지어선 열주실(列柱室)이 있고 오벨리스크와 지성소 등이 이어진다.
아몬 신전의 거대한 1 탑문 앞에는 아몬 신의 상징인 숫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20마리씩 좌우로 도열해 있는데 람세스 2세가 조성한 기념물이다
입구에 세웠으나 많이 훼손된 19 왕조 2대 파라오 세티 1세의 오벨리스크, 원래 작은 크기였는데 그나마 훼손된 상태이다
1 탑문을 들어서면 널찍한 공간의 큰 안뜰(대 광장, Great Court)이 나오는데 왼쪽으로는 세티 2세의 신전, 오른쪽으로는 람세스 3세의 신전이 있고 좌우로 작은 스핑크스와 열주(列柱)들이 줄지어 있다. 정면에는 많이 무너진 2 탑문과 탑문 좌우로 서있는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석상이 서 있다. 2 탑문을 들어서면 거대한 기둥들이 늘어선 대열주전(Great Hypostyle Hall)이다.
1 탑문을 들어서면 큰 안뜰이다. 정면에 무너진 열주 몇 개와 그 뒤로 커다란 석상이 지키는 2 탑문인데 벽체가 많이 훼손되었다
큰 안뜰의 오른쪽 벽면, 람세스 3세 신전 옆에는 기둥이 늘어선 열주(列柱)와 작은 양 모습의 스핑크스들이 줄지어 있다

2 탑문 앞에 서니 기둥들은 무너진 채 1개만 솟아 있고 탑문 좌우로 마주 보고 서 있는 거대한 람세스 석상이 보인다
마주 보는 한 쌍의 람세스 2세 화강암 석상중 왼쪽 석상의 모습, 발 밑에는 사랑하는 부인이자 이집트 왕조 최고의 미인 네페르타리를 함께 새겼다

람세스 2세가 완성한 2 탑문을 들어서면 대열주전(Great Hypostyle Hall)인데 중앙에는 높이 23m의 대형 기둥이 6개씩 2줄로 서 있으며 좌우 바깥쪽으로 높이 15m의 기둥 122개, 모두 134개의 대형 기둥들이 가로 세로 줄 맞추어 서 있다. 중앙 기둥은 아멘호테프 3세가, 나머지 기둥들은 19 왕조 세티 1세가 시작하여 람세스 2세 때까지 부자(父子)가 완성한 것인데 기둥의 높이차를 이용하여 햇살이 들어오는 채광창(clerestory)를 설치했다. 기둥마다에는 여러 신들과 파라오들의 이야기를 조각으로 새겼으며 다양한 문양과 상형문자들이 모두 채색이 되었던 듯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카르나크 신전은 수호신 아몬(Amun)을 모신 대신전답게 거대한 기둥마다 왕관 위에 길쭉한 기둥 모양이 2개 나란히 서 있는 아문왕관을 쓴 아몬신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기둥뿐 아니라 벽화마다 여러 곳에 아몬신을 새겼으며 일부 훼손되기는 했으나 아몬신 석상도 찾을 수 있다. 그만큼 아문신을 모든 신중의 최고 수호신으로 공경한 것이다.

2 탑문을 들어서면 3 탑문까지 이르는 넓은 광장의 중앙에 좌우 6개씩 모두 12개의 높이 23m에 달하는 대형 기둥이 서 있다. 대형 기둥 좌우로는 광장 전체를 가로 세로 줄 맞추어 모두 122개의 15m 기둥이 늘어서 있다. 기둥들은 단일 석재는 아니고 마디마디 잘라서 쌓아 올린 형태이며 기둥과 천장에도 채색 흔적이 남아있어 매우 화려했음을 알 수 있고 한쪽 기둥 위에는 채광창 흔적이 남아있다. 또한 거대한 기둥마다 빈틈없이 그림과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마다 아몬신을 새겨놓았다.(흰색 원 표시)
기둥뿐 아니라 따로 깎아 세운 아몬(Amun) 신 석상과 벽화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왕관위에 평행하게 길쭉한 기둥 2개가 우뚝 솟은 모양을 찾으면 되는데 많이 훼손되어 아쉽다

거대한 석조 기둥의 크기와 높이에 감탄하고 134개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에 대한 놀라움으로 대열주전(Great Hypostyle Hall)을 돌아보고 나와서 3 탑문을 향하면 높이 솟아있는 뾰족한 석조물, 오벨리스크 2개가 보인다. 앞쪽은 3 탑문을 지나 있는 투트모세 1세의 것이며, 조금 뒤로 보이는 것은 4 탑문을 지나 있는 하트셉수트의 것으로 부녀(父女)의 것이 각각 하나씩 남아 있다.

오벨리스크(Obelisk)는 태양신을 섬기는 태양 숭배탑인데 일부에서는 남근(男根) 사상과 연결된 거석(巨石) 문화라던가, 끝내 찾지 못한 오시리스의 거시기(?)라는 설이 있는데 원래 1쌍 2개씩 세운 것이지만 이리저리 옮겨지고 훼손되어서 현재 1쌍 2개가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4면이 모두 상형문자로 쓰인 오벨리스크는 희랍어로 바늘을 뜻하며 그래서 오벨리스크의 별칭을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래 3 탑문 지나서는 투트모세 1세와 투트모세 3세의 오벨리스크 2개씩 4개가 서 있었고, 4 탑문 지나서는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 2개가 서 있었는데 (그대로 남아 있었으면 얼마나 멋졌을까?) 현재는 아버지의 것과 딸의 것만 하나씩 남아 있고 그 딸의 양아들 투트모세 3세의 오벨리스크는 찾아볼 수 없다. 일설에는 자신의 양어머니이자 고모이며 장모였던 하트셉수트의 기록을 말살하려던 투트모세 3세가 그녀의 오벨리스크를 없애버리지는 못하고 담을 쌓아 안보이게 했었다고 전하는데 정작 자신의 오벨리스크는 터키의 이스탄불에 가 있다. (답사기 3편, '미완성 오벨리스크'편 참조)

허물어진 3 탑문 앞에 서있는 오벨리스크(오른쪽)가 투트모스 1세의 것으로 높이 23m에 달하며, 왼쪽 뒤로 보이는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는 높이 30m로 아버지 것보다 크고 높다
2개의 오벨리스크를 보노라면 어느새 3 탑문과 4 탑문을 지나게 된다. 5 탑문과 6 탑문은 규모도 작고 중간에 별 공간도 없이 붙어있어 그대로 직진하면 마지막에 아몬 신의 성소(聖所)가 나온다. 그 중간 지역은 대부분 무너진 채 복원되지 못하였으며 중간중간 벽화를 보면 로마제국 점령하 흔적인지 기독교를 상징하는 모습이 가끔씩 눈길을 끈다.
3, 4 탑문을 지나면 많은 부분이 훼손된 채 기둥만 남아있어 안쓰럽다. 이 작은 신전의 기둥은 겉면에 다시 작은 돌들을 덧붙인 모습이며 한쪽에는 채광창인지 통풍창인지 돌을 깎아 만든 창문 형태가 남아있다
역대 파라오를 기록한 왕명표(王名表, King List)로 보인다. 이집트 유적 대부분이 한글 안내는 고사하고 영어 설명판도 부족한 데다가 숱한 이집션들이 몇 달러만 주면 자기가 해설해주겠노라고 덤벼드는 통에 정확한 정보 획득이 어려워 아쉽다. 선진국 박물관처럼 지점별 번호를 부여하고 자동으로 해설이 나오는 우리말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이 도입되면 좋겠다

아몬 신의 지성소(至聖所). 직사각형 형태인데 입구(왼쪽 사진)를 들어서면 전실(前室, 가운데 사진)이 있고 그 안에 성소(聖所, 오른쪽 사진)가 있는데 태양신의 성스러운 나룻배와 신상을 모셔놓았을 받침대만 남아 있다. 부분적으로 파손된 천장에는 하늘 가득 별 모양 그림이 채색되어 그려져 있다. 지성소는 동서 방향으로 열려있어 일출과 일몰 때 햇살이 내부까지 들어오도록 지었다
벽면 여기저기에는 성소에 모셔진 태양신의 거룩한 나룻배 모습과 나룻배에 태운 신상을 옮기는 모습의 벽화가 있어 흥미롭다. 신전 축제 때 이런 모습으로 신을 옮겼으리라 추측해본다
6 탑문을 나와 아몬신 지성소를 보고 나면 왼쪽(북쪽)으로는 전쟁의 신 몬투 신전이 있고 주변에는 무너진 상태의 신전 건물들과 기둥 잔해가 널려있으며 오른쪽(남쪽)으로는 종교의식 때 신관들이 목욕을 했다는 신성 호수가 있다. 호수 옆 공터에는 부활을 상징하는 소똥구리(또는 풍뎅이, Scarab) 석상이 있고 그 옆으로는 부러진 오벨리스크가 있는데 하트셉수트의 것이라고 한다.
소똥구리(풍뎅이) 모양의 곤충 Scarab을 새긴 석상, 소똥구리가 소똥을 둥글게 만들듯이 둥근 태양을 밀어 올려 매일 다시 떠오르게 하는 부활을 상징하며 이집트인들이 이를 신격화한 것이 천지창조의 신 케프리(Khepri)이다
윗부분만 부러져 누워있는 오벨리스크 조각,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 2개중 하나라고 한다

테베(現 룩소르 일대)를 수도로 정한 중왕국 시대부터 세워지기 시작한 카르나크 신전은 대신전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엄청난 규모로 우리가 둘러본 지역은 전체의 1/10도 안된다고 하니 그 실체를 짐작하기도 어려우며, 어느 한 왕조 한 사람의 파라오가 건축한 것이 아니라 1500년 넘게 지나면서 여러 왕조가 바뀌면서도 계속 증축하고 보수하고 추가하면서 지은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는 기독교나 이슬람교 등 이교도들의 성소로 바뀌거나 특정 파라오에 의해 크게 훼손되기도 하였는데 18 왕조 10대 파라오인 아멘호테프 4세(아케나텐으로 개명) 때에는 아몬 신을 최고 수호신으로 모시는 다신교를 부정하고 유일신 아텐 태양신만을 섬기도록 하면서 심지어 멤피스와 룩소르 중간 지점으로 수도를 옮겨버렸다. 다행히 그 뒤를 이은 투탕카몬에 이르러 유일신 아텐 신앙을 부정하고 다시 아몬 신앙으로 복귀하였는데 그래서 투탕카몬 이름이 '아몬의 살아있는 화신', 즉 '투트 앙크 아몬 = 투탕카몬'이라고 한다.

[계속]
내 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 https://band.us/@4560dapsa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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