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박 9일의 이집트 답사가 마무리되어간다. 도착하면서 가장 남쪽, 나일강의 상류 아부심벨 신전부터 시작하여 하류로 내려오면서 필레 신전, 아스완 하이 댐과 로우 댐 그리고 미완성 오벨리스크를 본 후에는 크루즈로 갈아 타고 물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콤옴보 신전과 에드푸 신전에 이어 룩소르에 이르러는 왕들의 계곡과 여왕들의 계곡,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을 답사하고 휴양도시 후루가다에서 하루 쉬면서 충전하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까지 5시간을 달려왔다. 그 유명한 수에즈 운하를 보고 싶었지만 일정상 다음을 기약하며 서둘러 온 이유는 남은 이틀 동안에 통일 이집트 왕국의 첫 수도 멤피스와 최초의 피라미드를 만날 수 있는 사카라, 그리고 대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는 기자 지구를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피라미드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ㅇ 멤피스(Memphis)
멤피스는 BC 3100년경 초기 왕조 시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통일한 나르메르(Narmer, 메니 또는 메네스)가 세운 첫 번째 수도였다. 로마를 빼고 이탈리아를 얘기할 수 없듯이, 멤피스를 빼고 이집트를 말할 수 없다. 멤피스는 원래 Inbu-hedj(인부 헤지, white wall 하얀 벽)이라고 불렀다는데 하이집트의 상징이 하얀색이었으며, 당시 왕궁을 흰색으로 칠하지 않았나 추정해본다.
중왕국 시대로 들어서면 이집트의 수도는 룩소르가 있는 테베로 옮겨가지만 멤피스는 상업과 예술의 중심지로서 창조신 프타(Ptah) 신을 숭배하는 거대한 프타 신전에서 파라오들이 대관식을 하는 등 초기 왕궁의 수도로 자리를 지켜왔으나 로마 제국 점령기에 기독교 승인 후에는 다른 종교를 인정 안 하면서 많이 파괴되었고, 13세기쯤 휩쓸고 간 대규모 홍수로 매몰되어 흔적을 찾기 힘들게 되었다.
카이로 남쪽 25Km에 있는 멤피스는 현재는 나일강의 서안(西岸)에 위치하나 현재 멤피스 서쪽에 흐르는 작은 나일강 지류가 5000년 전에는 나일강의 본류였는데 강물의 흐름과 삼각주의 이동에 따라 지금처럼 변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본다면 당시 나일강을 사이에 놓고 왕궁인 멤피스는 동쪽, 무덤들이 모인 사카라는 서쪽이 되니 산 자는 강의 동쪽에 모여 살고, 죽은 자는 강의 서쪽에 모신다는 전통적인 지리적 예법에 부합된다고 보인다.
강물의 흐름과 삼각주 형성이 바뀜에 따라 도시의 위치도 변화하기 마련인데 로마제국 점령기 이후 이슬람 세력이 들어왔을 때는 델타 삼각주가 더 북쪽으로 올라가 그곳에 세운 이슬람 수도 푸스타트(Fustat)가 지금의 카이로가 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이렇게 멤피스는 나일강 동안(東岸)에 자리 잡은 초기 왕국의 왕궁터이며 강 건너 서안(西安)에 있는 사카라는 당시 파라오들이 죽으면 묻히는 묘역으로 최초의 피라미드인 계단식 피라미드가 있는 곳이다.
멤피스에서 주신으로 섬기는 천지를 창조하고 창작과 예술, 생활용품 발명까지 주관하는 프타(Ptha) 신을 모신 프타 신전의 라틴어 이름 '후트 카 프타 (hut-ka-ptah)'인데 여기서 이집트(Egypt) 이름이 유래한 것이니 초기 왕국의 수도 멤피스는 오늘날 이집트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이슬람 세력의 점령 이후 급격히 커진 카이로를 건설하면서 무차별적으로 멤피스의 석재를 뜯어 갔다고하며 지금은 당시의 왕궁이나 프타 대신전은 찾아보기 어렵고 신전에 있던 람세스 2세의 거대 동상과 몇몇 유물들만이 전시되고 있을 뿐이다.
경주(慶州)가 아니라 적어도 공주나 부여쯤은 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멤피스는 사실 남아있는 게 너무 없었다. 변변한 왕궁터나 신전도 없었으며 나일강의 흐름도 언제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개구쟁이 물장구치는 시골 하천만도 못한 물줄기 옆에 자리 잡은 통일 이집트 첫 수도였다는 사실이 조금은 민망했다. 그저 평범한 시골 풍경 속에 대추야자나무가 숲을 이룬 마을이었다.
[계속]
내 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 https://band.us/@4560dapsa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