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4.20 10:55

8박 9일의 이집트 답사가 마무리되어간다. 도착하면서 가장 남쪽, 나일강의 상류 아부심벨 신전부터 시작하여 하류로 내려오면서 필레 신전, 아스완 하이 댐과 로우 댐 그리고 미완성 오벨리스크를 본 후에는 크루즈로 갈아 타고 물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콤옴보 신전과 에드푸 신전에 이어 룩소르에 이르러는 왕들의 계곡과 여왕들의 계곡,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을 답사하고 휴양도시 후루가다에서 하루 쉬면서 충전하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까지 5시간을 달려왔다. 그 유명한 수에즈 운하를 보고 싶었지만 일정상 다음을 기약하며 서둘러 온 이유는 남은 이틀 동안에 통일 이집트 왕국의 첫 수도 멤피스와 최초의 피라미드를 만날 수 있는 사카라, 그리고 대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는 기자 지구를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피라미드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ㅇ 멤피스(Memphis)
멤피스는 BC 3100년경 초기 왕조 시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통일한 나르메르(Narmer, 메니 또는 메네스)가 세운 첫 번째 수도였다. 로마를 빼고 이탈리아를 얘기할 수 없듯이, 멤피스를 빼고 이집트를 말할 수 없다. 멤피스는 원래 Inbu-hedj(인부 헤지, white wall 하얀 벽)이라고 불렀다는데 하이집트의 상징이 하얀색이었으며, 당시 왕궁을 흰색으로 칠하지 않았나 추정해본다.

중왕국 시대로 들어서면 이집트의 수도는 룩소르가 있는 테베로 옮겨가지만 멤피스는 상업과 예술의 중심지로서 창조신 프타(Ptah) 신을 숭배하는 거대한 프타 신전에서 파라오들이 대관식을 하는 등 초기 왕궁의 수도로 자리를 지켜왔으나 로마 제국 점령기에 기독교 승인 후에는 다른 종교를 인정 안 하면서 많이 파괴되었고, 13세기쯤 휩쓸고 간 대규모 홍수로 매몰되어 흔적을 찾기 힘들게 되었다.

카이로 남쪽 25Km에 있는 멤피스는 현재는 나일강의 서안(西岸)에 위치하나 현재 멤피스 서쪽에 흐르는 작은 나일강 지류가 5000년 전에는 나일강의 본류였는데 강물의 흐름과 삼각주의 이동에 따라 지금처럼 변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본다면 당시 나일강을 사이에 놓고 왕궁인 멤피스는 동쪽, 무덤들이 모인 사카라는 서쪽이 되니 산 자는 강의 동쪽에 모여 살고, 죽은 자는 강의 서쪽에 모신다는 전통적인 지리적 예법에 부합된다고 보인다.

강물의 흐름과 삼각주 형성이 바뀜에 따라 도시의 위치도 변화하기 마련인데 로마제국 점령기 이후 이슬람 세력이 들어왔을 때는 델타 삼각주가 더 북쪽으로 올라가 그곳에 세운 이슬람 수도 푸스타트(Fustat)가 지금의 카이로가 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이렇게 멤피스는 나일강 동안(東岸)에 자리 잡은 초기 왕국의 왕궁터이며 강 건너 서안(西安)에 있는 사카라는 당시 파라오들이 죽으면 묻히는 묘역으로 최초의 피라미드인 계단식 피라미드가 있는 곳이다.

멤피스에서 주신으로 섬기는 천지를 창조하고 창작과 예술, 생활용품 발명까지 주관하는 프타(Ptha) 신을 모신 프타 신전의 라틴어 이름 '후트 카 프타 (hut-ka-ptah)'인데 여기서 이집트(Egypt) 이름이 유래한 것이니 초기 왕국의 수도 멤피스는 오늘날 이집트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이슬람 세력의 점령 이후 급격히 커진 카이로를 건설하면서 무차별적으로 멤피스의 석재를 뜯어 갔다고하며 지금은 당시의 왕궁이나 프타 대신전은 찾아보기 어렵고 신전에 있던 람세스 2세의 거대 동상과 몇몇 유물들만이 전시되고 있을 뿐이다.

멤피스에는 현재 특별한 유적은 남아있지 않다. 작은 소공원 규모에 야외전시 몇 점과 2층 건물 내부에 눕혀서 전시하는 람세스 2세의 대형 석상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초기 왕조 시대의 수도였다는 상징성으로 들러보았다. 야외 전시장 중앙에 위치한 18 왕조 7대 파라오 아멘호테프 2세의 스핑크스는 80톤 무게에 길이 8m, 높이 4.3m로 기자 지구 대피라미드 스핑크스를 제외하면 큰 편이다
람세스 2세 석상, 입상으로 서 있는데 왼발을 내미는 고왕국 시대의 기법을 보이고 있으며 근육질의 이목구비와 근엄한 표정이 제왕다운 힘을 느끼게 한다. 석상 오른 손목의 채색 흔적으로 보아 제작 당시에는 화려하게 색을 입힌 것으로 보인다
조금 더 작은 람세스 2세의 좌상도 있는데 머리와 양 팔등 상체 부분이 훼손 되었다. 그래도 파라오의 머리장식 네메스와 가짜 턱수염의 일부가 보이고 전형적인 의상인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이다. 후대에 이르러 파괴가 많았던 점이 아쉽다
람세스 2세의 아들로 왕위를 계승한 메르넵타(Merneptah)의 거대한 신전 왕좌실을 받치던 기둥의 주춧돌이다. 상형문자의 중앙에 타원형은 파라오 메르넵타의 이름을 새긴 카르트슈(cartouche)이다.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아프리에스(Apries)의 돌기둥, 람세스 2세보다 600년쯤 뒤인 이집트 제26왕조의 4번째 왕 아프리에스(Haaibra Wahibra라고도 함)가 프타 신에게 땅과 농노와 생산물 등을 바치는 내용들이 적힌 이 돌기둥은 프타(Ptah) 신전에서 발견되었다
복잡한 상형문자와 그림들이 새겨진 석관 뚜껑. 석관은 보통 나무나 돌로 만들어 그 안에 놓인 관을 안전하게 보호하여 망자(亡者)가 안전하게 지하세계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앞면 오른쪽에 저승사자인 아누비스가 보이며 뚜껑 위에는 누트(Nut) 여신이 날개를 활짝 펴 보호하는 모습을 새겼다
자그마한 2층 건물은 누워있는 람세스 2세 석상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지금까지 본 곳이 야외전시장이라면 이곳은 실내전시장인 셈이다

높이 14m, 무게 80톤의 람세스 2세 석상, 3000년 넘게 누워있지만 원래 입상이니 왼발을 앞으로 내딛는 자세이다. 왕관의 일부와 무릎 아래 두 발, 왼쪽 팔 뒷부분이 훼손된 채 늪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며 원래는 2개 1쌍인데 나머지 하나는 나세르 대통령이 카이로 역전앞에 세웠다가 현재는 기자 피라미드 옆에 건설 중인 대박물관(Great Museum)으로 옮겨 2020년 개관 준비 중이라고 한다

람세스 2세 입상을 세웠을 때의 모습인데 프타 신전의 규모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된다. 양 손에 무엇인가 쥔듯한 자세인데 궁금하다
람세스 2세의 왕명(王名)을 적은 타원형 카르트슈(cartouche)가 석상에 10개가 있다고 하여 찾아보니 오른쪽 어깨(왼쪽 사진)와 허리 벨트(가운데 사진), 오른손 팔찌(오른쪽 사진)등에 보인다. 그중 오른쪽 어깨의 카르트슈는 람세스 3세가 람세스 2세의 카르트슈를 자기의 것으로 바꿔 고친 것이라니 놀랍다

경주(慶州)가 아니라 적어도 공주나 부여쯤은 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멤피스는 사실 남아있는 게 너무 없었다. 변변한 왕궁터나 신전도 없었으며 나일강의 흐름도 언제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개구쟁이 물장구치는 시골 하천만도 못한 물줄기 옆에 자리 잡은 통일 이집트 첫 수도였다는 사실이 조금은 민망했다. 그저  평범한 시골 풍경 속에 대추야자나무가 숲을 이룬 마을이었다.

[계속]

내 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 https://band.us/@4560dapsa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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