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멤피스의 묘역(墓域), 사카라(Saqqara)
사카라(Saqqara)는 죽음의 신 '소카르(sokar)'에서 유래한 지명인데 멤피스에서 (과거에는 나일강의 본류였을 수 있는) 나일강 지류를 건너 서쪽에 있는 일종의 고분(古墳) 지역이다. 즉, 멤피스가 왕궁이나 신전등 생활지역이라면 사카라는 왕족이나 귀족들의 무덤을 쓴 묘역이다. 마치 경복궁과 한양이 동쪽에 있고 서쪽인 서오릉이나 서삼릉에 왕릉을 조성하듯 한 것인데 이곳에는 최초의 피라미드로 꼽히는 계단식 피라미드가 있어 답사의 필수코스이다.
초기 왕조 시대에는 무덤의 형식이 지하에 현실(玄室)을 파고 관을 놓은 후에 돌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었으니 이를 마스타바(Mastaba)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고왕국 시대인 3 왕조에 들어와 피라미드가 등장하는데 3 왕조 2대 파라오인 조세르(Djoser)가 친구이자 재상이었던 임호텝(Imhotep)에게 '계단식 피라미드(Step Pyramid)'를 짓게 하니 피라미드의 효시로 일컫는다.
그러나 계단식 피라미드는 1992년 지진으로 붕괴 위기에 처한 이후 10년 넘게 복원공사 중인지라 내부를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2020년 2월 15일 현장 방문) 귀국하고 나니 14년간의 복원공사를 거쳐 2020년 3월 5일부터 일반에 개방하였다는 소식이다. 차후 방문 시에는 내부 관람이 가능하니 다행이다.
왕족과 귀족들의 묘역(墓域)이었던 사카라는 서쪽으로 전 지역이 광활한 사막지대이며 계단식 피라미드를 비롯하여 여러 개의 크고 작은 피라미드와 마스타바, 그리고 장제전이나 신전 건물 흔적이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다. 특히 멀지 않은 남쪽으로는 굴절 피라미드(Bent Pyramid)와 붉은 피라미드(Red Pyramid)도 있는데 시간 관계상 못 본 것이 못내 아쉽다.
그중에서 계단식 피라미드는 혼자 덜렁 있는 게 아니라 장제전이나 신전 등의 건물군을 포함하여 높은 담을 네모지게 둘러친 동서 230m, 남북 550m쯤 되는 단지(團地, Complex) 개념인데 현재는 남쪽으로 장제전 일부가 남아있고 동쪽으로는 신전 건물들을 복구 중인듯했다.
계단식 피라미드(Step Pyramid)
장제전 건물과 우나스 피라미드를 둘러보고 다시 북쪽에 있는 계단식 피라미드로 향하였다. 장제전을 지나 넓은 광장이 있고 동쪽으로는 신전과 부속건물들로 구성된 건물군이 회랑처럼 이어진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1821년 러시아인에 의해 조사가 시작되었고, 1934년에는 지하 무덤에서 미라의 다리 부분이 발견되어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무덤이라는 주장이 정설로 굳어지게 되었다.
피라미드의 밑면은 121x109m의 장방형이며 높이는 60m로 모두 6층의 구조인데 처음부터 이 모습, 이 크기로 지은 것은 아니고 지하 무덤 형식의 마스타바의 상부를 확장하였다가 그 위로 4층 구조의 계단식 건축을 올린 후에 전체적인 크기도 확대하고 높이도 6층으로 높이는 과정으로 지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임호텝이 조세르를 위하여 지하무덤 마스타바를 지었는데 계속 살아있자(파라오가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 무덤 공사를 해야 했다 함) 마스타바를 조금 더 확장하고 보완하였으며 그래도 계속 살아있어 그 위로 한 층 올려 짓고, 좌우로 확장하는 식으로 추가 공사를 하여 6층까지 올린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다 보니 피라미드 몸체에는 아무것도 없고 지하에 마스타바 형식이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고왕국 시대에 등장한 피라미드는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에서 시작하여 그의 뒤를 이은 세켐케트-카바-후니 順으로 이어지면서 후임자들도 피라미드를 짓고자 하였으나 조세르의 아들 세켐케트는 1951년 부서진 피라미드이기에 자연 언덕인줄 알았다가 지하 무덤이 온전히 발굴된 탓에 알려졌으며 카바와 후니의 피라미드로 이어지는데 모두 미완성이거나 무너진 피라미드가 되었다.
3 왕조가 끝난 후 후니의 아들이자 사위인 스네프루(Snefru)가 막을 연 4 왕조에서도 피라미드를 계속 짓게 되는데 스네프루는 무려 3개의 피라미드를 지었는바 처음 시도한 메이둠(Meidum) 피라미드는 매끈한 외벽으로 짓다가 무너지고 말아 포기하였으며 두 번째 지은 피라미드가 굴절 피라미드(Bent Pyramid)로 처음에 55도 급경사로 짓다가 기술적으로 어려워지자 43도로 줄인 것이다. 그는 다시 피라미드 건축을 시도하여 경사각 45도로 온전한 피라미드를 완성하니 굴절 피라미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붉은 피라미드(Red Pyramid)로 스네프루는 그곳에 묻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계단식 피라미드에서 굴절식 피라미드를 거쳐 붉은 피라미드(붉은색의 돌로 쌓아서 전체적으로 붉게 보여 그렇게 부른다.)로 이어지면서 모양을 완성한 피라미드 건축의 변천과정은 스네프루의 아들인 쿠푸(Khufu)왕에 이르러 기자 지구에 대(大)피라미드(Great Pyramid) 건축으로 정점에 달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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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