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4.22 10:36

디지털 시대다. 손으로 쓰는 것 대부분을 컴퓨터가 대신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그럼 과연 컴퓨터가 손으로 하는 일을 대신한다고 편리함과 장점만 있는 것일까? 세상 이치는 장점이 있으면 그에 반해 단점도 따른다.

20여 년 전 직장에서 각종 보고서를 작성할 때 볼펜으로 손으로 직접 써서 작성했다. 당시에는 컴퓨터가 매우 귀한 시절이라 대부분의 보고서는 손으로 직접 작성해야만 했다. 패이지 수가 많을 때는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기기도 했다. 요즈음 신입사원들이 생각할 때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는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은 보고서 작성 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판을 치면서 글을 작성하고 수치 계산은 엑셀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빠르게 작성한다. 사칙연산을 모두 편리한 컴퓨터에 의지하다 보니 굳이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컴퓨터가 알아서 척척 해준다. 요즘 보고서는 컴퓨터의 도움 없이는 실제로 작성이 불가한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이달 치러진 선거에서 유권자를 지역별, 성별 몇 명이 했는지를 사람 손으로 작성하면 온종일 해야 할 것을 컴퓨터는 불과 몇 분 만에 통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렇게 대부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컴퓨터가 대신 알아서 척척 해주다 보니 굳이 머리 사용할 일이 점점 없어진다. 이 대목에서 간과해선 안 될 중요한 것이 있다. 한때 프랑스 학자 라마르크가 주장한 용불용설이다. 이것의 의미는 사용하지 않는 신체 기관은 점점 퇴화해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손을 통해 두뇌의 기억하는 기능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데 컴퓨터가 그 기능을 대신하다 보니 두뇌를 사용하지 않게 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두뇌에서 기억하는 기능이 떨어지게 되고, 그것은 곧 기억력 감소와 더 나아가 치매까지 일으킬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를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러한 컴퓨터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결론은 다시 손으로 글자를 적는 것이다. 물론 다시 옛날로 돌아가 컴퓨터가 하는 일을 사람이 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하루의 일상생활에서, 예를 들자면 회사 생활에서 하루 8시간의 업무를 수행한다고 치자. 회사 업무에서 규정된 8시간은 컴퓨터를 이용해서 일 처리한다. 그리고 퇴근 후 집으로 와선 최소한 30분 정도라도 필기도구를 이용하여 직접 손으로 글을 적어 보는 것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선 편히 쉬어야 하는데 또다시 업무 외적으로 머리를 써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시작하면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필자 또한 이렇게 실천하기 위해 몇 번 시도했으나 역시나 바쁜 일상의 업무에서 작심삼일로 끝나곤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지속해서 쓸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옛날 속담이 참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순간이 왔다. 모 일간지에서 마침 하루 천자 캠페인을 하는 기사를 봤다. 보자마자 바로 이거구나 하고 바로 신청하고 글쓰기에 동참했다. 방법은 이 일간지에서 제공하는 천자 글을 보고 그대로 필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사 후 페이스북에 그 글을 올리는 것이다.

처음엔 내가 쓴 글을 공개적인 장소에 올린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원래 글자를 잘 쓰는 편이 아니기에 나의 치부를 공개석상에 드러낸다는 것에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내가 쓴 글을 보고 혹시나 악플을 다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 가지 진리가 적용되었다.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할 때 더 많은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하루 천자 캠페인에 참가한 사람 중에는 마침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 용기 있게 글을 올리는 것을 보고 비로소 필자도 용기를 내어 지난달부터 필사를 시작했다. 정성 들여 쓴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다. 한 달을 꾸준히 쓰면 상품도 준다는 얘기도 있고 해서 기억력 향상과 경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과감히 도전했다.

처음엔 오랜만에 쓰는 손글씨라 글씨체가 내가 보기에도 참 악필이었다. 실망감이 밀려왔다. 3일 정도 쓰면서 포기해야 하는 고민이 역시나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루 천자 캠페인 동료들에게 ‘좋아요’라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면서 용기를 내어 꾸준히 쓰기 시작하면서 벌써 50일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필사하고 있다.

손글씨가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말은 글씨를 쓰기 시작하면서 30여 일이 지난 시점에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초기엔 한 단어 보고 쓰고, 또 한 단어 보고 쓰기를 반복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너 문장도 한 번에 죽 보고 바로 필사하는 수준까지 갔다. 그만큼 기억력이 향상되었다는 방증이다.

50대부터 기억력이 두드러지게 나빠지기 시작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세월 가는 대로 방치하면 남들보다 일찍 아들, 딸 이름도 몰라보는 지경이 올 수도 있다. 살아있는 동안 아들, 딸 이름도 또렷이 기억하고 손자, 손녀 이름까지 기억하는 멋진 노년으로 가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이 하루 천자 쓰기라고 생각한다. 기억력 왕성하고 치매를 모르는 멋진 노년을 맞이하기 위한 하나의 활동인 하루 천자 쓰기. 50대 이상 중년들에게 기회가 되면 한번 해보길 감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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