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는 법흥왕 15년(528)에 이차돈의 순교로 비롯된 일인데 이곳 도리사는 그보다 한참 전인 19대 눌지왕 2년(418)에 지어졌다고 하는 신라 불교 최초의 사찰이다.
전해오기로는 묵호자(墨胡子)로도 알려진 고구려의 아도화상(阿度和尙)이 모례장자(毛禮長者)의 집에 머물면서 신라에 불교를 전교하던중에 선산의 도개(桃開)에서 오색의 복사꽃이 눈 속에 피어남을 보고 그 자리에 절을 창건하니 지금의 도리사(桃梨寺)라는 것이다. 다만 숙종 때에 큰 불이 나서 모든 당우가 불타버리고 영조 때에 산내암자였던 금당암으로 옮기니 현재의 절집들이 그것이고 옛 절집은 터만 남았다고 한다.
모례 장자의 집에 있던 우물이라고 전해오는 傳 毛禮 家井(전 모례 가정)
도리사 초입에는 최근에 세운 거대한 산문(山門)이 서 있는데 지나치게 큰 건 아닌가 하는 걱정어린 마음이다. 산문에서 절집까지는 좌우로 싱그러운 가로수 길을 지나 5Km쯤 제법 멀고도 오르막인 좁은 길을 돌아 올라가면 되는데 경내에는 일주문이나 사천왕문은 없이 바로 돌계단을 올라서면 정면에는 2층 건물 설선당(說禪堂)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역시 2층의 수선료(修善寮)가 있는데 료(寮)가 붙은 건물은 흔치않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수선료(修善寮) 뒤로 돌아 올라가면 야은 길재가 스님들에게서 글을 배웠고 성철 스님도 참선을 했었다는 태조선원(太祖禪院)이 나오는데 현판은 오세창의 글씨이다. 사대부 기와집처럼 소박한 선원 옆으로 정사각형에 가까운 네모난 전각이 극락전이며 그 뒤편에는 1977년 사리공에서 금동육각사리함(국보 제208호)과 진신사리 1과가 발견된 석종형 승탑처럼 생긴 세존사리탑이 있다.
도리사 극락전.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정사각형에 가까운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이며 추녀의 끝에는 4개의 활주(活柱)를 받쳤으며 극락전 안에는 아미타 부처님이 독불(獨佛)로 모셔져 있다. 조선시대 건물인데 지붕위에는 신라나 백제 때나 쓰였던 커다란 치미를 얹어 아쉽다고 한다
극락전 뒤편의 세존사리탑은 원래 다른곳에 있었으며 도굴꾼들이 손을 대었지만 다행이도 사리공 안에 교묘하게 잘 숨겨져 있어서 도난되지 않았다가 1977년에 사리함과 사리가 발견되어 큰 뉴스가 되었는데 진신사리는 사리탑을 만들어 적멸보궁에 모셨으며 금동육각사리함(국보 제208호)은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있다.
극락전 뒤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 석종형 승탑처럼 생겼는데 윗 부분에는 世 尊 舍 利 塔 5글자를 한 글자씩 둥근 원에 조각하여 새겼으며, 승탑과 받침대의 조각이 매우 섬세하다. 이곳에서 진신사리와 국보 사리함이 나왔는데 하단 지대석과 받침대는 최근 새로 만들어 모셨다
극락전 앞마당은 그다지 넓지않아 다소 옹색한 느낌이며 낯선 모습의 큼직한 석탑하나가 있어 관심을 끈다. 탑(塔)인지? 아니면 석재들을 크기별로 모아 쌓아놓은 제단(祭壇)이나 계단(戒壇)인지 모르겠는데 탑이라 생각하고 살펴보면 전탑을 모방한 모전탑이 아닌가 싶다. 탑의 남쪽에는 감실의 느낌이 나는 문비(門扉) 형상이 보인다.
도리사 석탑. 보물 제470호인데 탑으로 보면 높직한 기단을 쌓은 뒤 1, 2층은 모전탑의 형식으로 올렸으며 3층은 하나의 몸돌과 지붕돌 위에 노반과 보주가 얹힌 모습이다. 절에서는 화엄석탑이라고 부른다
석탑 옆으로 난 산길을 조금 내려가면 아도화상이 좌선을 했다는 바위가 보이는데 모례장자가 찾아오니 자루를 하나 내밀며 시주를 하라는데 아무리 집어넣어도 자루가 차지 않았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이곳에서 아도화상이 손가락으로 멀리 황악산을 바라보며 절을 짓기 좋은 자리라하여 지은 절이 김천의 직지사(直指寺)라고 한다.
아도화상 좌선대, 고인돌인듯 미완성 석탑인듯 몇 개의 돌위에 하나의 돌을 얹었는데 윗면이 잘 다듬어져있어 아도화상이 앉아서 좌선을 한 자리라고 한다
좌선대 옆에는 크고 작은 2개의 비석이 서 있는데 오른쪽 큰 비석은 '아도화상 사적비'로 신라에 불교를 전한 행적을 기록하였으며 뒷면에는 紫雲碑(자운비)라고 새겼다. 왼쪽 작은 비석은 '불량답사 시주질비'로 도리사에 시주를 한 사람들을 적어놓은 비석이다
극락전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발길을 돌려 절집 왼쪽으로 높이 올라가면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뒤편 사리탑에는 1977년 극락전 뒤 세존 사리탑에서 나온 진신사리를 모셨으나 1987년에 만들어진 석물들은 아직은 새로 만든 티가 난다. 사리탑을 마주보는 전각을 적멸보궁이라고 하는데 과연 불단에는 불상이 없이 사리탑이 훤히 보이도록 통유리창을 내었으며 사리탑을 향하여 예불을 올린다.
도리사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적멸보궁,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을 마주하고 있다
사리탑은 1977년 극락전 뒤 석가세존탑에서 발견된 진신사리를 모셔 1987년에 세웠다고 한다
적멸보궁은 불단위에 불상이 없고 커다란 통유리창을 통하여 사리탑의 진신사리를 보며 예불을 올린다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러 온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도리사. 복숭아꽃 배꽃이 피어있어 도리(桃梨)라는 예쁜 이름을 갖게되었으며 1977년 진신사리와 금동육각사리함이 나와 세간에 큰 뉴스가 되었으며, 이로 진신사리탑을 세우니 적멸보궁이 되어 8대 적멸보궁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도리사가 위치한 경북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에는 아도화상이 모례장자의 집에 머물면서 신라에 불교를 전했다는 '불교초전마을'이 들어서있는데 나름대로 이곳을 성역화하고 기념관과 방문객들을 위한 시설 등을 지었지만 생각보다 찾는 이가 적은지 전체적으로 활기가 없어보이며 군데군데 관리도 소홀한 듯 하여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