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1.10 14:43

(3)‘부정적인 감정일지라도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

우리는 서로 다르지요. 외모뿐만 아니라 음식 취향부터 성격이나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릅니다. 그런데 실생활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처럼 상대방이 나와 생각이나 마음이 ‘똑같다’고 여기거나 심지어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러다보니 즐겁게 대화를 하다가도 상대방이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싫어한다든지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못마땅해 하는 발언을 하는 순간 기분이 나빠지기도 합니다.

이런 일도 흔히 볼 수 있지요. 아내가 퇴근하고 집에 온 남편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보, 오늘 어머님 집에 갔다 왔는데, 점심때 김치 한포기를 꺼내 썰다가 김치대가리를 잘라서 버렸는데, 어머님이 그걸 버렸다고 막 뭐라 하시는 거야. 얼마나 무안했는지 몰라. 우리 친정에서는 김치대가리 그냥 버리거든.”하고 말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아내는 그냥 자신의 무안했던 기분을 이야기한 건데……. 남편이 그걸 ‘서로가 느끼는 감정의 다름’으로 보지 못하고 옳고 그름으로 받아들여서 “당신 우리 엄마 흉보는 거야. 우리 엄마가 어려운 상황에서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알기나 해.”라고 한다면, 단순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 다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감정은 각자의 지문만큼이나 ‘고유한 나’를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도 느끼는 감정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막다른 골목길에서 커다란 흰색 개와 마주쳤다고 가정해봅시다. 어떤 사람은 무서움에 부들부들 떨겠지만 또 다른 사람은 친근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다시 말해 어렸을 때 개에게 물렸던 경험이 있는 사람과 어렸을 때 마당에서 개를 키웠고 그래서 개와 놀며 지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의 반응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렇게 우리는 같은 것을 경험하고도 느끼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다른 경험들을 했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해서 부부가 목숨 걸고 싸우는 것들이 다 그렇잖아요. “왜 당신은 치약을 중간에서부터 짜느냐 끝에서부터 짜야지” 그러면서 싸우지요. 어쩌면 이것도 부부가 어린 시절에 어떤 경험을 했느냐의 문제이지요.

어린 시절에 치약을 끝에서부터 짜도록 훈련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배우자가 치약을 중간부터 짜는 것을 보면 기분이 상하겠지요. 반면에 어린 시절 치약을 중간부터 짜도 괜찮았던 사람은 배우자로부터 치약을 끝에서부터 짜야한다는 지적을 계속 받으면 나름 마음이 편치 않을 겁니다.

이런 경우도 있지요. 모임에서 중국집을 갔습니다. 함께 한 회원들이 모두 잡탕밥을 주문했습니다. 반면에 이 어르신은 자장면을 주문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이 어르신은 많이 힘들고 우울했습니다. 왜 일까요?

이 어르신은 ‘잡탕밥’을 보는 순간 ‘꿀꿀이 죽’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꿀꿀이 죽이란 1950년대 미군부대에서 먹고 남은 잔반들을 모아 팔팔 끓인 것인데, 배가 너무 고파서 사먹긴 했는데 먹다보면 담배꽁초도 나오고 이쑤시개도 나왔다고 하지요. 이 어르신은 그 이후로 섞어서 끓인 음식들을 꺼리셨다고 하는데 참으로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다른 경험들을 했기 때문에 어떤 일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겠습니다. 만약에 지금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고 있다면,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의 기분이 어떨까요?

비를 보며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로인해 기분이 급 우울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왜냐하면 과거에 비와 관련하여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비를 대하는 현재의 기분이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감정은 그것이 어떤 감정이든지 그러니까 부정적인 감정이라 할지라도 판단 받지 않고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신중년 신노년의 마음공부' 저자 강현숙-